IMF 10년 ‘공동체주의’가 뜬다

공동체주의는 효율과 경쟁 위주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느림과 상생을 추구하는 ‘생활공동체’에서부터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공동체 자본주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생활공동체는 비혼, 육아, 생태(친환경) 등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꾸리는 형식으로 생겨나고 있다. 실례로 비혼여성들의 모임인 ‘정착과 유목 사이’는 주체적인 삶과 생태친화적인 건강한 살림을 중심생각으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모여 살기 위해 귀농준비를 하고 있다.

도시인들이 기존에 살던 도심 속 터전에 친환경적인 삶과 더불어사는 공동체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생태공동체 마을도 있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과 부산의 ‘물만골공동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다르게 생태적인 환경을 찾아  도시를 떠나 농촌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들도 있다. 경남 산청의 ‘안솔기마을’과 전북 무주의 ‘광대정마을’ 등이 실례다.

공동체주의는 산업화 과정과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환경적 부작용을 먼저 겪은 서구에서 앞서 발전했다. 지역 중심의 공동체 모델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일에서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지역공동체가 꾸려져 주목을 끈다. ‘여자들이 산다’라는 프로젝트 아래 240명의 여성조합원들이 모여 뮌헨시 옛 공항 부지에 49가구의 공동주택을 세운 것이다. 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150만원 정도를 갹출해 조합을 세웠고, 설계와 시공에도 여성 전문인력을 참여시켰다고 한다. 주택 및 부지 마련 비용은 정부, 지자체, 시민들의 후원금과 대출로 충당했다.

이곳을 지난 8월 다녀온 김재희 서울예대 교양학부 겸임교수는 “7년 세월 끝에 완공한 이 주택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므로 자기 집에 평생 거주할 권리는 갖되 양도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여성공동체 설립을 위해 다양한 논의와 실천을 행할 수 있는 의식화된 여성들,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권영준 경희대 교수, 심상달 KDI 선임연구위원 등 전문가들은 “다 같이 더 잘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고, '자발적 나눔'이 이뤄지는 공동체 자본주의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공동체 자본주의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도 경제자유와 경제정의를 동시에 조화롭게 만족시킬 수 있는 형태를 뜻한다. 공동체 자본주의의 이상을 가지면 사회적 기업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한 무소속 대선후보는 ‘공동체 민주주의’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기도 했다. 해당 후보에 따르면, 공동체 민주주의는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공동체의 운영을 그 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결정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연구서 ‘휴머니즘론’(나남)을 통해 “공동체주의가 바로 한국 사회의 신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힘을 가진 이가 최고가 되는 경쟁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 바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서적 이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황대권씨는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지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공동체적 구조가 필요하다”며 과거의 전통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여성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 사회까지 두루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여성이 역사 속에서 해온 일이 생명을 살리는 ‘살림’이기 때문에 여성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며 “가부장제 문명 속에서 여성들은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희생당해왔기 때문에 여성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살려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