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언론 형태로 성평등 향한 발걸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공학 대학 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학내 성폭력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성별 차이에 따른 불편함과 폭력성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대학 내에 여성공동체들이 활발히 조직되고 있다.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를 비롯한 학내기구와 동아리, 소모임 등 형태도 다양하다.
198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총여는 ‘생리 휴강 실시’, ‘반성폭력 학칙 제정’, ‘여학생휴게실 설치 및 확대’ 등의 이슈를 다루어왔다. 대부분의 총여 관계자들은 “성폭력, 여성취업문제, 여성공간의 부족 등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들이 많지만 학교당국이나 총학생회 차원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남학생들의 역차별 의견이 모아지면서 총여는 연일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3월 연세대는 총여학생회 폐지 논란으로 진통을 겪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총여를 해체하고 총학 산하에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학생회칙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란이 된 것. 결국 총투표가 무산되면서 이 논란은 한시적으로 마무리됐다.
총여 외에 대학 내 여성공동체로는 서울대와 연세대가 가장 활발한 편이다. 이주여성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모임 ‘구공탄’, 여성신학학회 ‘물구나무’, 인문대 내 여성소모임 ‘마녀소굴’, 사회학과 여성학회 ‘펨수다’ 등이 연세대 내에서 구성된 여성공동체다.
기존의 총여와는 다른 방식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여성공동체도 있다. 서울대 ‘관악여성모임연대’는 단과대별로 존재하는 여성모임연대의 일원들이 모여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등 여성연대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성주의 언론 형태로도 나타난다. 서울대 여성주의 매체 ‘쥬이쌍스’(www.jouissance.pe.kr)는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들을 표출시키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시작했다. 1년에 네번 정기적으로 발간하며 홈페이지를 통한 활동도 하고 있다.
여성동아리 형태로 여성주의를 실천하기도 한다. 연세대 ‘I will’은 춤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댄스 소모임. 매주 2회, 방학에는 주 3~4회 함께 모여 끼와 열정을 맘껏 발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정기공연도 열고 있다. 서울대 여성주의자 문화집단 ‘난리부르스’는 여성들이 즐겁게 문예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대안적인 공간이다. ‘싸이월드 클럽’(nanlyblues.cyworld.com)을 통해 회원들과 매년 여성주의에 기반한 연극 공연을 한다.
여대 안에도 여성공동체는 존재한다. 이화여대와 성신여대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단체인 ‘여성위원회’가 있다. 학내에 성폭력상담소 등의 여성 관련 기구가 있기는 하나 학생들과 더욱 친근한 관계에서 여러 개선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교내 생리대 자판기 확충, 교수 성폭력 근절을 위한 모임 결성, 여성의 날 행사 주최 등이 그 예다.
“왜 여대에 여성공동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숙명여대의 여성학술소모임 ‘S.F.A(Sookmyung Feminist Association)’의 신나래 회원은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면 여성들 스스로 공부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면에서 여성공동체가 서로의 상황과 실정을 파악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여성과 남녀공학 대학교의 행복한 만남을 위하여(학영사)’라는 단행본을 통해 남녀공학 대학 내 여학생들의 불편함을 분석한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의 나임윤경 교수. 그의 말에는 대학 내 여성공동체의 필요성이 핵심적으로 요약돼 있다.
“대학 밖의 세상이 남녀가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곳을 축소해놓은 곳이자 성인기 초기에 있는 대학생들이 사회화하는 공간이 바로 남녀공학 대학입니다. 대학 내의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등’을 위한 연습을 할 때 사회를 평등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