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미래 열 사랑의 힘은 여성” 직접 느껴
간디의 가까운 동료인 비노바
주민자치·민주주의가 바탕에 아직도 살아있는 사상과 영성

 

어느덧 인도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지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잔잔한 감동과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인도 여성공동체인 ‘비노바 아쉬람’(아쉬람은 공동체를 뜻하는 인도어). 지리적으로 인도 중심에 위치한 와르다에 있는 ‘비노바 아쉬람’을 찾은 것은 그곳에서 릭샤(인도의 대중교통)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간디 아쉬람에서 2주 정도 머물 때였다.

간디 아쉬람은 1918년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돌아와 세운 곳으로, 인도 독립을 위해 기나긴 투쟁을 시작한 곳이다. 그는 1930년 360㎞를 행군하며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펼친 ‘소금행진’을 시작할 때 “인도가 영국 통치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아쉬람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간디 아쉬람에 도착했을 때 공간 자체가 주는 평화로움과 공동체 식구들의 친절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영적 수련의 전통이나 지역사회 공동체 운동의 흔적들은 이제 희미한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듯 보였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이곳이 박물관처럼 되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여성공동체 비노바 아쉬람에서는 간디 아쉬람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저 내부 구경을 하는 것 외에는 이야기 상대를 찾지 못해 내부 서점에서 책 몇권을 사고는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며칠 뒤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과 함께 다시 찾았을 때, 한 할머니 수도자로부터 아쉬람을 소개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비록 젊은 사람들의 입회가 끊긴 지 오래되어 30명 남짓 나이든 수도자들만 남아있는 공동체이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비노바의 사상과 영성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비노바 아쉬람은 설립자인 비노바 바베의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간디의 가장 가까운 동료인 비노바는 간디와는 달리 정치적 실천보다 수도자로서의 자기 삶에 더욱 큰 무게중심을 두었다. 1940년 간디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선정하기도 한 그는 인도 독립 후 20년 넘게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지주들을 만나 가난한 이웃에게 땅을 나누어주라고 설득해 개인 소유의 토지를 헌납 받는 ‘부단운동(토지 헌납운동)’을 성공적으로 펼쳤다.

비노바는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스승은 ‘어머니’였다며, 세상을 구원할 참다운 길이자 힘은 ‘사랑’이라고 했다. 또한 새로운 미래를 열 사랑의 힘은 ‘여성’들이 주도할 것으로 믿었다. 내게 아쉬람을 소개하던 그의 제자는 “영성에 민감한 여성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1970년 이 공동체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이제 종교의 자리를 ‘영성’이 대치하고 있고, 과학이나 권력은 영성의 안내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금도 아쉬람의 모든 식구들은 똥을 치우는 일에서부터 요리하는 일까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함께 한다. 많은 시간을 실 잣는 일로 보냈던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철저한 자급노동으로 모든 식사와 살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30명 남짓 되는 아쉬람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손님들 또한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렇게 한다.

아쉬람 생활에서 또 인상 깊었던 점은 그저 시골 할머니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수도자로서 진리를 찾아가는 치열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점이다. 이는 그녀들과의 짧은 대화와 강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행하는 투박한 도서와 대화, 강의에서 그저 시골 할머니처럼 보이는 그들이 일생을 추구하여온 깨달음의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주민자치와 민주주의를 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지금도 아쉬람 내부 운영에서 철저한 민주적 자치공동체의 운영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쉬람의 모든 사안은 만장일치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하여 한 사람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몇번이고 회의를 다시 해서 전체의 합의를 이룬다고 한다. 다수결에 기반한 민주주의란 참다운 민주주의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가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진리를 설명하면서 그들은 하나의 촛불과 하나의 태양은 결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배 없는 공동체적 자치, 차별 없는 삶에 대한 존경, 정직한 노동을 원칙으로 삼고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내며 살고 있는 비노바 아쉬람의 여성들. 그들은 매일 찾아오는 100여명의 방문객을 위하여 아쉬람 서점을 마련하고, 비노바 바베와 그의 제자들이 추구해온 진리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인도 곳곳에서는 과거부터 사회적 실천과 영적 수련의 일치를 통한 사회개혁을 꿈꾸며 공동체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공동체들이 역사로 변해가고 있거나 상혼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다. 이 가운데 여성공동체 ‘비노바 아쉬람’은 노쇠한 모습으로도 꼿꼿하게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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