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이 여성 지위향상 앞당겨"

 

1988년 8월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성신문사 창립 발기인대회’에서 발행인으로 선출된 이계경 초대 발행인. 당시 그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신문을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회고한다.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1988년 8월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성신문사 창립 발기인대회’에서 발행인으로 선출된 이계경 초대 발행인. 당시 그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신문을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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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경 여성신문 초대 발행인이 “평생을 바칠 일감”, 즉 여성운동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1974년 봄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면서다. 당시 그는 여성 사회교육에 참가하면서 “여성문제에 개안”을 하는, 여성의식의 성장을 체험하고 이를 현실에 구체적으로 투영하기 시작한다.

20대에 시작해 50대에 이른 그의 여성운동 이력 중 정점은 88년 ‘여성신문’ 창간이다. 그는 여성신문 창간에 대해 “여성운동 중 가장 넘기 힘든 산”이었지만 “여성들의 힘을 결집시키고, 교류하게 하고, 도움을 나누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해왔고, 여성들이 겪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문제들을 사회 이슈화해서 정부에서 여성정책의 틀을 만드는 데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회고한다. 따라서 “여성신문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향상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라고 자부한다.(자서전 ‘세상을 바꾸는 신나는 리더’)

그는 “판 잘 벌이는 여자”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여성신문 안팎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내며 여성운동계의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76년 청년여성연합회 회장을 시작으로 여성의전화 상근대표, 성폭력위기센터 설립위원회 공동대표, ㈔한국문화복지협의회 사랑의문화봉사단 단장, ㈔한국여성정치연맹 이사,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 21세기 여성미디어 네트워크 대표,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이사 등을 거쳐 2002년 “국회에서의 여성운동”을 위해 한나라당 16대 대선기획단 운영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7대 국회 비례대표로 활동하면서 한나라당 성폭력대책특위 TF팀장, 국회 예결위 성인지예산특위 위원장, 국회 문화정책포럼 공동대표 등으로 활약했다. 

84년 매 맞는 아내 상담기관 창설 공로로 서울시장 표창을, 93년 한국여성의전화연합·한국성폭력상담소 공로패를, 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올해의 여성상’을, 2000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여성을 돕는 여성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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