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연출가 한일관계 공동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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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을 내린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극단 물리가 공연한 '짐'(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이었다.

무엇보다도 '첼로'(1994년), '덕혜옹주'(95년), '세종32년'(96년), '나, 김수임'(97년), '나운규'(99년), 그리고 '배장화 배홍련'(2001년) 등을 통해 성과를 거두어온 정복근과 한태숙 두 여성연극인이 오랜만에 다시 공동작업에 임했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짐'의 소재가 이미 이 둘이 '덕혜옹주'를 통해 조명해본 한·일관계라는 점도 큰 흥밋거리였다. 1945년 8월24일 오후 5시20분, 일본 마이츠루만 앞바다 해안 300m 지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이 배경을 이룬다. 이 배는 그동안 강제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은 조선 남녀들이 해방(일본으로서는 패전)을 맞이하여 돌아오는 귀국선이었다. 아직 그 전말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차츰 잊혀져가고 있는 사건이다.

작가는 이를 소재로 한·일 양국간의 해묵은 '짐'을 한·일 두 가족간의 서신교환의 형식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정치일선에 있는 한국남자는 자신의 고모가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바로 이 사건으로 희생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경력에 혹여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외면한다. 그러던 중 일본으로부터 편지와 함께 짐 보따리 하나를 받게 된다. 짐과 편지가 몇 차례 오가던 중 드디어 이를 보낸 일본여인을 찾아 항의하는 과정에서 실은 여인의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이를 행해 왔음이 밝혀진다.

어부인 아버지는 정신대원이었던 한 조선여인이 최후의 순간까지 짐 보따리를 움켜쥔 채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목격자다. 일본 당국이 일부러 배를 폭파시켰다고 보고 이 여인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범죄인 양 평생토록 괴로워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니고 있던 짐을 연고 가족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양쪽 후대는 한결같이 서로가 그 짐의 임자가 아니라고 상대방에게 미루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이처럼 분명한 주제의식과 전개는 추리극적 구성과 신체극적 양식을 통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좌우로 각각 한국과 일본의 두 가정이 설정되고, 중앙에 경사무대가 설치되어 아비규환의 장면 등이 전개되는 한편, 이 모든 사단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상층무대를 통해 어부로 하여금 사건의 진상을 읽어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오랜 연습을 통해서야 가능할 앙상블을 보여주는 중에 이남희(어부 역)의 비중이 커 보인다.

이 공연은 오랜만에 연극의 힘을 느끼게 해준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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