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곳곳 폭력·갈등·소외·욕망을 보듬다
아프가니스탄·몬트리올 빈민가 등 버려진 아이들 주로 다뤄 눈길
개막작은 중국 감독 펑 샤오강의 '집결호'로 1948년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민당의 전투를 다룬 중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다. 폐막작은 95년 TV 애니메이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극장판으로 새롭게 만든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서(序)'다.
이란 여성 영화감독들의 약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이란 영화계 양대 거장인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향을 받은 이란 여성감독들의 약진이다.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 '불상은 수치심 때문에 붕괴되었다'는 탈레반과 미군 병사들에 의해 증오에 길들여진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현실을 그린 사회고발 영화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막내딸인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자마자 아버지의 '마흐말바프 영화학교'에 입학해 영화를 공부한 수제자. 1997년 9세 때 만든 단편 '우리 이모가 아팠던 날'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일찌감치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마니아 악바리 감독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출신. 자신이 주연했던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전작 '10'의 속편격인 다큐멘터리 '10+4'를 선보인다. 한대의 자동차 안에서 일어나는 모두 열번의 대화를 보여준 영화 '10'에서 열연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자동차를 몰고 나선 마니아 악바리. 그러나 암을 앓고 있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실제로 암 투병중인 감독이 병의 진행과정과 주변의 반응을 솔직하게 카메라에 담으며 삶을 성찰한다.
한국의 젊은 여성감독 데뷔작도 눈길을 끈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선희 감독의 '도화지'는 여고생의 성장담을 그린 영화. 한국영화에서 보이는 성장영화들이 대부분 남성 위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여고생 밴드를 통해 요즘 여고생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여배우 출신 감독들이 바라보는 여성 현실
마니아 악바리 감독 외에도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여성감독 중에는 여배우 출신이 유독 많다. '여왕 마고', '뮌헨' 등에 출연했던 이탈리아의 유명 배우 발레리 브루니 테데스키는 신작 '여배우들'에서 여성으로서의 고민과 배우로서의 욕망, 아이를 갖고 싶은 40대 여배우가 겪는 갈등과 혼돈을 그렸다.
독일 출신의 앙겔라 샤넬렉 또한 배우로 경력을 시작한 영화감독. 그의 영화 '오후'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의 인물들을 불러들여 여름휴가 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을 통해 가족간의 의심과 죄의식을 탐색한다.
마케도니아의 여성감독 테오나 스트루가르 미테브스카는 아역배우 출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겪고 있는 마케도니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 자매'를 통해 세 여성이 혼란한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소속감을 찾으려는 모습을 표현했다.
아티스트 출신 감독들의 유망한 데뷔작도
다른 예술 장르를 겸하고 있는 여성감독들의 유망한 데뷔작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들의 영화 가운데는 소외된 계층, 특히 소년의 눈에 비친 세계를 다룬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 '무툼'의 산드라 코구트 감독은 브라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위예술 및 설치예술가다. 장편 데뷔작인 '무툼'은 10세 소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브라질 가족의 이야기로 아이들 눈에 비친 배신과 폭력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가 그려진다.
영화 '크로스 라이프'의 감독인 클레어 메카시도 시각예술작가로 활동해온 아티스트다. 장편 데뷔작인 '크로스 라이프'는 시드니의 악명 높은 거리인 '킹스 크로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신인가수, 건강복지사, 분노에 차있는 무모한 소년 등 여러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했다.
또한 몬트리올 빈민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링'의 감독인 아나이스 바르보 라발레트는 저널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이스라엘에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안겨준 영화 '젤리 피쉬'의 공동감독인 쉬라 게펜은 유명한 아동도서 및 희곡 작가다. 문의 (051)747-3010, www.piff.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