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방혜자

"우리는 광대한 우주로부터 하나의 씨앗을 받아 이 세상에 온 존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꽃 피었다가 다시 우주의 품 속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무한하고 신비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방 화백은 전시관 1층 정면에 전시된 작품 '빛의 눈'을 보며 작품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빛'을 주제로 10년간의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자리다. 전시된 100여점의 작품들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같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명과 우주, 빛의 신비로움을 관조하고 찬양한다.

'생명의 숨결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방 화백의 작품 앞에 서면 고개를 끄덕인다. 태초의 모습이 이랬을까. 방 화백의 작품들은 우주와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듯 에너지를 뿜어낸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는 그림에서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도록 천연재료를 고집한다. 천연안료나 석채(돌가루 물감)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천연안료를 가지고 무직천이나 닥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불가에서 스님들이 일일이 수공예로 만든 닥종이(닥지)는 쉽게 구겨지고 도드라져 자체의 물성을 한껏 드러내는 속성을 지녔다. 또 무직천은 뒷면에 칠을 하면 앞면에 은은히 빛이 배어나오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림에 혼을 담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방 화백의 작업은 명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매일 아침 작업 시작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명상에 들어간다.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해 내면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창작이 이뤄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에게 명상은 작품의 원동력이다.

그가 빛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린 시절부터다. 몸이 약했던 어린 시절, 시냇가에 혼자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의 빛을 보았던 소녀. 그는 그것이 빛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빛에 대한 동경은 시대적 상흔과도 맞물렸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자랐어요. 모든 것이 암울하고 어둡던 시대였죠. 그때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 가서 그림을 배우는 게 한줄기 환한 빛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자기가 가진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서양만 동경했던 허무맹랑한 아가씨였죠.(웃음)"

당시만 해도 프랑스에 한국 유학생이 드물었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시기여서 캔버스가 없어 입던 치마에다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해도 열정이 있어 행복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기이기도 했다"고 돌아보았다. 예술의 길을 인도한 스승을 만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방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김환기 선생의 70년대 후기작과 닮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는 이번에 환기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수화 선생을 기리는 작품 '김환기 오마주'를 조성했다.

"수화 선생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노랑, 분홍, 푸른색을 사용했어요. 가운데 커다란 원이 있고 12개의 조각유리가 겹쳐지는 형상입니다."

'김환기 오마주'는 전시실 3층 정면에 걸려 있다. 채광이 들면 12개의 조각유리들이 반짝 빛난다. 그는 얼마전 빛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는 전시실을 다니며 관객들에게 일일이 작품 설명을 했다. 자신이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의 이런 생각은 지난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나눈 대화를 엮은 대담집 '대화'(샘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제가 일생 동안 가장 고심한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술을 통해 평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술을 통해 세상에 환한 빛을 고루 비추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입니다.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기쁨과 평화를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방 화백의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방 화백은 시인이기도 하다. '마음의 소리'(1986년)와 '마음의 침묵'(2001년) 등 2권의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시를 발표했다. 마찬가지로 빛을 주제로 한 그의 시는 이번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