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뚫고 개인역량 인정… 새 여성정치시대 열어
낮은 국민지지도·남성지향 보수성향 극복이 과제

지난 9월15일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패배한 심상정 후보를 끝으로, 17대 대선을 향해 달리던 주요 여성후보들이 일제히 중도에 고배를 마셨다.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심상정, 추미애 후보는 당 경선에서 패배했고, 한명숙 전 총리는 후보 단일화를 통해 스스로 대권 도전을 접으면서 본선에서 여성후보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오는 10월15일 경선 결과가 확정되는 민주당의 장상 후보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지율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어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이렇듯 17대 대선정국에 '여풍'을 몰고온 주요 여성후보들이 비록 중도에 물러나긴 했지만 이들이 보여준 도전정신과 남긴 과제는 향후 '여성대통령'의 탄생 기반을 다지는 훌륭한 밑거름이 됐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관련기사 A4면, A13면>

우선 헌정사상 이번처럼 많은 여성들이 대권에 도전했던 적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의 경우 한나라당 경선에서 1.5%포인트의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고, 한명숙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을 무난히 통과했다. 아울러 심상정 후보는 민노당 경선 결선투표에서 47.3%를 획득하는 등 이들이 보여준 개인적인 리더십과 정치역량 또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기대치를 훨씬 웃돌았다.

정치컨설팅 전문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이번 대선정국에서 여성정치인들의 역할은 지난 2002년 대선 때와 현저히 달랐다"면서 "본격적으로 여성 대권주자들이 떠오르는 시대의 전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개인의 정치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라며 "이들이 정치인에게 가장 강점이 될 수 있는 도덕성과 청렴성 등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들 모두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향후 정치발전에 좋은 선례를 남긴 점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들의 도전에 대한 평가가 후한 이유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결과적으로는 여성후보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 됐지만 박근혜, 심상정, 한명숙 후보 모두 상당히 선전했고, 이를 기반으로 여성정치인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면서 "무엇보다도 이들의 뒤끝 없는 승복은 향후 자신들의 활동에 자양분이 될 뿐 아니라 정치사에 있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후보 모두가 당 경선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대선에서 여풍이 결실을 맺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는 해석이 붙는다.

이정희 교수는 "사회구조상 여성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현실적 정치구조 속에서 당과의 정책노선 불일치, 부족한 인지도, 경력부족 등이 아프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점에서 더욱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헌 이사 또한 "지역구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 등 기존의 정치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들의 역량은 크게 향상했고 뛰어난 부분도 많았지만 각 당의 이념이나 노선을 바꿀 만한 세력이나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그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여성후보들의 대권 도전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 전 총리는 대권 포기선언 직전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첫 여성대통령에 도전해보니 벽이 두꺼웠고,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도 많이 느꼈다"며 "지금 '여성대통령은 시기상조 아니냐'는 편견이 장애물로 놓여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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