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는 딸기를 보호한다고 가득 쳐놓은 철망
인간 이기심에 의해 다른 생명은 스러져가고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이 목동 언덕 마을에 올라간다. 수요일 저녁에 유기농 바구니를 찾으러 한번, 목요일 저녁에 요가 수업 받으러 또 한번. 매번 헉헉거리며 그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파리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고즈넉한 정취에 끌려 그 수고스러운 계단 오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목동 언덕 마을 한 귀퉁이에는 마을에서 관리하는 '집단농장'이 하나 있다. 도시인들도 정원에서 야채와 과일을 길러 먹을 수 있도록 파리시에서 몇년 전부터 운영하는 농장이다. 말이 농장이지 워낙 땅값이 하늘처럼 비싼 파리인지라 개인에게 할당되는 땅은 1㎡에 불과하다. 땅 한 뙈기라는 말이 딱 적당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얻으려면 몇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지원자가 많다. 나도 작년부터 지원자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데, 아직 땅 준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계속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파리 시내에는 약 20여개의 이런 집단농장이 있는데 파리지앵들의 반응이 좋아 계속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집단농장에 비해 소규모에 속하는 목동 언덕 마을의 집단농장은 20여명 정도가 각자 나름대로의 밭을 가꾸고 있다. 20여개의 작은 밭이 옹기종기 한곳에 모여 있고, 건너편 한편에는 꽤 커다란 빈자리가 있어 탁자와 의자 몇개가 마련되어 있다. 밭을 가는 사람들끼리 쉬어가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간단한 피크닉을 할 수 있게 마련된 장소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보고 저 땅도 밭으로 활용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10명 정도에게는 땅 배당이 더 갈 텐데 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농장의 5분의 1이나 되는 자리를 피크닉 자리로 할당하는 이들은 실용만 추구하는 게 아니었다.
이 집단농장은 목동 언덕 마을 사람들이 설립한 마을협회에서 관리하는데, 나는 계단 아랫마을인 다운타운에 사는 사람이긴 해도 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다. 요가나 유기농 바구니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입비가 포함된 협회 가입이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유기농 바구니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유기농으로 재배된 제철 과일과 야채가 든 바구니를 생산자가 매주 집 근처 배달장소에 가져다놓는다.)
이 협회의 회장인 카트린은 나와 같이 요가도 하고 유기농 바구니도 같이 이용하는데, 언젠가 내게 만약 농장 열쇠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열쇠가 있으면 언제든지 농장에 들어와 피크닉도 할 수 있고 조용히 바람도 쐴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았다.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는 도시인들에게는 더 없는 혜택이기도 했다.
지난 5월에 난 이 농장의 열쇠를 얻었다. 하루 날씨가 좋았던 수요일 저녁나절, 유기농 바구니를 찾아들고는 이 농장을 찾았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문은 잠겨져 있는 상태였고, 문을 따고 들어가는 느낌이 마치 새 집에 들어가는 듯했다. 구석에 놓여 있던 낡은 의자에 앉으니 갑자기 어디 시골 별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정면으로 펼쳐지는 몽마르트는 그날도 석양 아래서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차량과 도시 소음이 걸러진 침묵으로 뒤덮인 언덕 분위기가 아주 독특했다.
한 10여분을 그렇게 앉아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밭 주인들이 무엇을 심어놓았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어 밭 구경을 하러 일어섰다. 대나무를 심어둔 사람, 토마토, 딸기,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한 구덩이에 있는 밭에는 밭 임자가 딸기를 가득 심어놨는데 빨갛게 익은 딸기들이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었다. 이 딸기 위에는 작은 철망이 낮게 쳐져 있었는데, 아마도 곤충이나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인 듯했다.
빨간 딸기에 감탄하며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철망 밑에 무슨 발톱 같은 게 걸려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섬뜩한 생각에 눈이 자동적으로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나는 처음에 쥐가 철망에 갇힌 거라고 생각하여 끔찍한 생각에 눈을 돌렸던 것인데, 다음 순간에 마음을 크게 먹고 자세히 바라보니 쥐가 아니었다. 새였다. 조그만 새가 두 발톱이 철망에 걸린 채 몸을 아래로 향하고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딸기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다가 철망에 다리가 걸리게 되고,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발톱이 철망에 더 철썩 얽매이게 돼, 자연히 몸이 아래로 쏠리게 된 것 같았다.
혹시라도 살아있을까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조금 전에 움직였다고 생각이 든 것은 바람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조그만 새는 언제 이 철망에 갇힌 것일까? 내가 의자에 앉아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는 순간에 내 코앞에서는 조그마한 새가 생의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아름답고 평안하다고 여긴 환경에서 느닷없이 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 죽음이 더욱 섬뜩하게 여겨졌다.
평온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삶은 한시도 날카로운 날 갈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딸기를 보호한다고 철망을 쳐놓은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가엾은 새 한 마리가 죽었다. 더 이상 밭 구경할 마음이 사라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데 계속 그 새가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만약에 내가 의자에 앉기 전에 이 새를 발견했더라면 그 새는 살아있었을까? 아니면 유기농 바구니를 찾으러 가기 전에 들렀더라면? 5분, 아니 10분이라는 간격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