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법학으로 양성평등 사회 이끌어야죠"
법학+여성학으로 다양한 문제에 성인지적 관점 적용
올초 학회창립…법조계에 성평등한 사건처리 가능케

 

"법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지금까지 그 '사람'들은 남성이었죠. 객관적·중립적인 관점에서 법을 해석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남성의 시각이었던 겁니다. 때문에 여성주의 관점에서 새로운 법체계를 만들어나가자는 게 '젠더법학'의 취지입니다."

올해 초 창립한 한국젠더법학회의 김엘림(49) 회장(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에게 요즘처럼 바쁜 때도 없다. 방학이지만 두 달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회 세미나 준비를 위해 연구실에 나와 자료를 준비한다. 또 100명이 넘는 회원들에게 수시로 이메일을 보내 학회활동 하나하나를 보고한다. 최근에는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회원들이 관련 자료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연구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다소 생소한 개념의 '젠더법학'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젠더법학의 가장 큰 특징은 법학과 여성학을 접목했다는 겁니다. 여성이 겪는 다양한 문제와 양성평등에 관한 인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기 때문에 성 인지적 법학이라고도 하죠. 종종 여성만을 위한 법학이 아니냐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 양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법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학회원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법조인을 비롯해, 교수, 법 실무기관 종사자, 대학원생 등 전공 불문, 성별 불문이다. 학회 창립 전인 2005년부터 연구회를 조직해 학술활동을 펼쳐왔으니, 내실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젠더법학이 법조계에 자리 잡으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김 회장은 "성평등한 사건 처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최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관련 판례 바꾸기 운동을 하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980년부터 여성단체와 많은 법학자, 실무자 들이 여성문제와 관련해 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고, 이제야 하나둘씩 성과를 맺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법조계에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는 것에도 김 회장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여성의 활발한 진출이 자연스럽게 성평등한 법과 사회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숫자가 많아진다고 자동으로 법조계의 지형이 평등하게 바뀔 거라고 보지는 않지만, 여성법조인들이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젠더법학이 추구하는 바를 깨닫고 함께 노력한다면 성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법여성학자로도 유명한 김 회장은 방통대에서 유일하게 '남녀평등과 법' 과목을 개설·강의하고 있다. 학창시절 대학에서 여성학을 접하면서 '법여성학'이란 분야도 알게 됐다. 미국은 이미 70년대부터 법여성학이 자리 잡은 것에 비하면 우리는 지금도 성장단계라 공부할 게 아직도 많다고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김 회장은 "일반인들도 젠더법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학회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엘림 한국젠더법학회 회장은

고등학생 시절 고향인 마산에서 또래 여성들이 여공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문제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1977년 이화여대 법학과에 입학해 '여성학' 강의를 듣고 여성근로자의 법적 보호 등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동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진학해서는 줄곧 노동법을 연구했다.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채 연구원 1기로 입사해 19년간 여성 관련 법제연구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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