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 오라나(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쿡 아일랜드(Cook Islands)에 와 있습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15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로, 뉴질랜드에서 비행기로 3시간40분을 동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 인구는 모두 합해서 달랑 1만8000여명입니다. 게다가 가장 북쪽 섬에서 남쪽에 있는 수도 라로통아 섬으로 오려면 비행기로 3시간 반이 걸린답니다. 먼 섬에 살고 있는 여성의 삶이 얼마나 피곤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쿡 아일랜드는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작년에 비준하고 그 첫 보고서를 오는 8월3일에 심사받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그 준비를 잘 하기 위해 쿡 아일랜드 정부가 일종의 모의 심의를 계획했습니다. 정부 대표들과 NGO 대표들, 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여 뉴욕에서 심의 예행연습을 하기로 한 거지요. 심의를 하게 될 여성차별철폐위원회를 대표해 제가 참석하고, 또 이미 심의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뉴질랜드와 피지에서 정부 대표 한명씩이 와서 예행연습을 하는 워크숍입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이곳에 이주한 것은 8세기께부터지만, 영국 탐험가 쿡 선장이 1773년 처음 찾아내서 국가 이름에까지 쿡 선장의 이름이 남게 되었지요. 1888년 영국의 보호령으로 되었다가 1891년에 뉴질랜드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에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쿡 아일랜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아직 뉴질랜드의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고, 화폐도 뉴질랜드 달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요. 2년 전 완전히 독립할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많은 원조를 뉴질랜드로부터 받고 있고, 그 때문인지 남태평양 여러 섬나라들 가운데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습니다. 많은 쿡 아일랜드 사람들이 뉴질랜드나 호주에 나가 살고 있고, 또 반대로 상대적으로 경제상황이 안좋은 피지나 사모아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요산업은 관광이지요. 금요일 밤 오클랜드에서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는 뉴질랜드 관광객으로 가득 찼고 제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습니다. 관광이 주요산업이다 보니 관광객에 대한 절도범죄는 경찰이 재빨리 수사하지만 강간이나 어린이학대 같은 범죄는 신고해도 늑장수사라고 상담소 대표 나니가 일러줍니다. 나니는 30대 중반인데 9살 난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결혼한 적이 없이 아이를 낳아 당당하게 키우고 있지요.

여성운동은 나름대로 활발한 편입니다. 여성단체협의회도 여러 섬에 조직돼 있고, 가정폭력 문제와 씨름하는 상담소는 경찰을 대상으로 의식화 훈련도 시키고 있습니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이 당면과제 중 하나지요. 그런데 인구가 적다보니 아주 독특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정부와 NGO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정부 관리가 여성단체의 일원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친척관계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항의데모 같은 것을 하기가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또 도넛 가게를 운영하던 사업가가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을 겸하고 있으니까 여성문제를 관장하는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삶은 어느 나라에 사느냐에 따라 정말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말 유사합니다. 

쿡 아일랜드 정부가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자체적으로 비준해 첫 보고서를 제출하고 심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평등권에 대해 의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심의를 받고 나면 훨씬 더 분명해지겠지요.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인구가 아주 적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쿡 아일랜드의 여성들도 삶이 좀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 자신이 행운이라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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