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또 성범죄…현행법은 면허정지 불가능
"환자진료때 간호사·보호자 배석 의무화" 목소리

최근 경남 통영의 한 내과의사가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환자들을 전신마취시켜놓고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주로 산부인과 등지에서 진료를 빌미로 의사가 여성환자를 성추행해 구속된 사례가 있기는 했으나, 내과 진료과정에서 성폭행사건이 발생해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는 처음이다.

지난 6월26일 통영경찰서는 여성환자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모 내과의원 원장 H(4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H씨는 점심시간 등 간호사가 없는 틈을 타서 여성환자들에게 전신마취제를 주사한 뒤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는 것. 이 사실은 평소 H씨를 의심해온 간호사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검사실에 숨겨놓고 성폭행 장면을 촬영하면서 들통이 났다. 경찰은 “조사 결과 H씨가 최근 두달 사이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여성환자 3명을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형사처벌은 물론 의사 자격까지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성폭행을 사유로 의사면허를 정지시키는 것이 불가능해 동일범에 의한 성범죄 재발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불법낙태나 건강보험료 부당청구, 허위진단서 발급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에만 의사면허 정지처분이 가능하다.

의사들의 성범죄 문제가 불거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0년 경남 창원에서는 산부인과 의사 박모씨가 진료 도중 갑자기 환자에게 달려들어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또 2003년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마찬가지로 산부인과 의사인 김모씨가 생리통 검사를 받으러온 여성에게 마취제를 투여한 뒤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성폭력 상담사례 중 의사 등 의료기관 종사자에 의한 성폭력 건수가 51건이나 됐다. 신고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비슷한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상담소측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료계와 정부 당국은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기는커녕 의사 개인의 양심에만 맡긴 채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6월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련법상 처벌이 불가능하고, 일부 의사들의 범법행위를 가지고 정부가 나서 모든 의사를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종전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조차 “의사, 교사를 대상으로 성범죄 예방을 위한 매뉴얼북을 제작해 올해 안에 배포할 계획”이라는 말만 했다. 당사자인 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의사협회(의협)도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자의사회 관계자는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차원에서 징계를 내리고 제명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자정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또 “당장 관련법 개정이 어려울 경우, 남자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간호사나 보호자를 대동하는 것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부소장도 “남자의사가 진찰하거나 마취 등 시술을 할 경우에는 간호사가 배석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성폭력 의료교육을 개인병원으로까지 확대해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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