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검사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 ‘발끈’
본지 전화 인터뷰 통해 ‘불쾌감’ 드러내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게서 사춘기 소녀가 쓴 듯한 연애편지를 받은 검사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빵을 달라고 외치는 백성들에게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느낌이라면 지나친 걸까.”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를 얼굴마담으로 선택했노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전 총리도 스스로를 얼굴마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실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얼굴마담이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현직 여성검사인 정미경(42·사법연수원 28기)씨가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두 여성을 향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지난 20일 출간된 저서 ‘여자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랜덤하우스)를 통해서다. 두 사람 모두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를 각각 지내 이력 앞에 ‘최초’가 따라붙는 인물이다.
정 검사는 책에서 “실력과 자질을 키워야 할 시기에 남성의 배려를 받아 현실에 안주해버린 ‘최초’ 여성들은 후배 여성리더들의 역할모델이 될 수 없다”면서 “누군가를 역할모델로 삼을 때는 남성인지 여성인지보다는 존경할 만한 인품과 실력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 전 장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그라면 여성 전체를 위해서라도 법무장관직을 거절했어야 했다”면서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서 이 땅에 살고 있는 후배 여성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 법률자문관으로 파견근무 중인 정 검사는 1년 전부터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특별히 강 전 장관과 한 전 총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20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 검사는 “여성이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 여성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여성이 대통령에 도전한다면 ‘여성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다운 자질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부터 남성에게 유리하게 지어진 집의 천장을 부수려 하지 말고, 남녀가 모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새 집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선배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란 후배 여성들에게 희망과 꿈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두 당사자들은 정 검사의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금실 전 장관은 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본격적인 질문도 꺼내기 전에 “그 책에 대한 거라면 관두시죠. 취재거리도 안되고…”라며 불쾌한 감정을 표시했다.
한명숙 전 총리측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형주 대변인은 같은 날 전화통화에서 “정미경 검사가 남녀평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여성’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공감한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최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고위직 인사들의 힘겨운 도전과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여성 검사 정미경’이 아닌 ‘검사 정미경’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신문기사를 책에 그대로 인용한 것과 관련해선 “만약 정 검사가 여성 고위직 인사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성 선배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눈으로 보았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