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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가을. 어린이들에게도 책 읽는 재미를 새삼 환기시키는 계절이다. 전통 향기

흠씬한 그림동화책들을 한 자리에 모아본다. 아울러 이들 얘기들이 어떻게 시공간을 초월해

현대로 그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데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우선 웅진에서 나온 그림동화 시리즈중 (김중철 엮음/ 유승하 그림/ 5천

5백원)는 ‘행복을 찾아나선 여자아이들’이란 부제로 남자 못지않게 슬기와 용기를 가지고

고난을 헤쳐가는 옛 소녀들의 모험담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집

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나 갖은 멸시를 당하며 버림받았던 소녀가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를

구하려 어떤 희생도 마다 않고 용감하게 역경을 이겨나가 결국 행복을 쟁취하는 ‘버리데

기’.

이 설화엔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로부터 남편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이 여성에게 퍼붓는

온갖 박해가 동화의 형식을 빌어 단순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고난을 극복하며 구렁덩덩

신선비를 찾아 헤매는 색시, 남편이 못된 임금과 싸워 이기도록 헌신적 지원을 마다 않는

잉어색시, 힘만 믿고 우쭐대는 남동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누나 등의 얘기도 같이 수

록되어 신체적 약함을 보충하고도 남는 여성적 지혜와 따뜻한 감성을 구수한 얘기 형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같은 웅진출판 시리즈인 ‘모험을 떠난 남자아이들’이란 부제가 달린 (김중철 엮음/ 강우근 그림/ 5천5백원)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해나가는 소년들의 모습을 신나게 담고 있다. 특히 콧김손이, 오줌손이 등의 오형제가

각각의 재주를 합해 너끈하게 역경을 이겨내는 얘기는 이 다양성의 시대에 각각의 개성 존

중과 협동심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나게 설명하고 있다. 두 시리즈 모두 단순하고 기하

학적인 선으로 그려진 삽화구도가 현대적이고도 익살스러운 느낌을 준다. 반면, (글 서정오/ 그림 박경진/ 보리 펴냄/ 9천원)는 극사실주의적으로 주인공들의 표

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 외에도 기괴하리만치의 음침한 색상과 확대되어 그려진 호랑이의

포악함이 이채. 어찌보면 어린 아이들에겐 다소 생경한 터치로 그려져 호기심과 더불어 약

간의 공포감도 불러일으킬 것 같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할머니가 자라, 쇠똥, 멍석 등에게

팥죽 한 사발씩 내준 인정 덕에 호랑見?해치우게 도니다는 전개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선녀들을 주 소재로 한 ‘백두산의 불괴물’, ‘선녀바위’, ‘반달선녀와 금강신선’,

‘보영선녀와 장쇠’가 수록돼 있는 ‘짱아야 콩새야 이야기 나라로 떠나자’(황영애 글/

김영철 인형/ 현암사 펴냄/ 8천5백원) 시리즈는 삽화 대신 정성스레 하나하나 만든 인형들

이 지면에 등장, 마치 인형극을 보는 듯한 입체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얘기의 주인공들인

선녀들은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때론 인간적 심성으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는 어려움을 겪

기도 하지만 결코 따뜻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친밀감을 더해준다. 이들이 지상 인연을 끊

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바로 인간과의 사랑때문이란 설정은 다소 상투적이다.

그런가 하면 (글 이호백/ 그림 이억배/ 재미마주 펴냄/ 7천3백

원)은 현대적 내음도 상당히 가미시키면서 나름대로 전통스러운 맛을 풍기는 그림동화. 한

창 전성기에 돌연 등장한 경쟁자에게 자리를 밀려난 후 좌절과 방황 속에 헤매던 수탉이 아

내와 자손들의 격려에 힘입어 자긍심과 삶의 의의를 되찾게 되는 과정이 기둥줄거리. 치열

한 경쟁속에 소모품으로 전락, 도태의 길을 걷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민담적 분위기를 적절

히 섞어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전통 벽화나 탱화를 연상시키는 다소 유

치하고도 화려한 색상의 삽화엔 민초 특유의 색상을 연상시키면서도 전통적이고도 현대적인

느낌이 적절히 배어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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