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 자~알 익었지? 이번 주말 매실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기다려!”
지난 가을 우리집 매실주를 맛본 친구들이 매실주 안부를 수시로 묻더니 드디어 바닥 내러 쳐들어온단다.
지난해 6월 두 그루 매화나무에서 딴 매실이 10㎏이었다. 이 중 8㎏은 매실 원액을 만들기 위해 설탕을 재우고, 2㎏은 술 담그기용 소주를 부어 밀봉해 놓았었다. 매실 원액은 매실과 동량의 설탕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가 두달 반 만에 거르면 원액이 12ℓ 정도 나온다. 이렇게 거르고 난 후 매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르고 난 항아리에 매실을 그대로 둔 채 소주를 동량 부어 놓으면 다시 매실주로 탄생한다.
한달 후 매실을 건져내고 한 1년 다시 숙성시키면 그 맛과 향이 기가 막히다. 매실이 흡수하고 있던 설탕의 단 맛과 매실이 내는 향과 알코올이 적당히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만들어낸다.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매실 원액을 뽑고 난 매실을 이용한 술이 더 인기가 높다. 생매실로 담근 술은 드라이하고 독한 반면, 매실 원액 부산물로 담근 매실주는 달달하고 목넘김이 좋으며 입에 착착 붙는다. 원래 술꾼들은 단맛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은 술맛이 아닌 분위기에 취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달달한 매실주를 더 좋아한다. 지난 가을 놀러온 친구들에게 이 매실주를 맛보였더니 맛있다고 난리가 났다.
“캬~ 이런 맛 처음이다. 매실 향이 기가 막히는구만.”
사실은 채 익기도 전인데 까딱하다간 완전 숙성되기도 전에 동이 날 것 같아 반 정도를 간신히 숨겨 놓았었다. 그 매실주가 이제 1년이 되었으니 제대로 맛이 날 때인데 친구들은 수첩에라도 적어 놓았었는지 어찌 그걸 귀신같이 알고 전화질을 해대는지….
“친구야, 매실주 익었으니까 놀러온나…” 하려 했는데, 먼저 알고 난리들을 치니 생색내며 초대하긴 다 글렀다.
드디어 약속한 주말이 되어 무려 아홉명이 몰려왔다. 오늘 매실주는 완전히 동나는 날이다. 안주는 오이, 상추, 쑥갓, 미나리, 깻잎 숭숭 썰어 고춧가루, 식초, 참기름으로 양념한 골뱅이 무침. 분위기 마구 상승하고 있을 때 ‘나도 기분이다!’ 나의 특별 서비스는 계속된다.
“이것도 맛 좀 볼래?”
“어머, 어머…. 빛깔 예술이다. 이건 뭐야?”
“진보라색은 오디주, 연분홍은 앵두주….”
“난 빨간색 앵두주!”
“야, 오디주가 그렇게 좋다는 거 아니니? 난 오디주….”
지난 여름 집 앞 저절로 자란 오디가 까맣게 익은 걸 보고, 건드리기만 해도 까만 진액이 터져버리는 오디를 따 모아 술을 담가 두었었다. 도시 사람들은 오디가 뽕나무 열매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앵두도 두 소쿠리나 따서 반은 주스 만들어 먹고, 빛깔이 하도 고와 반은 술을 담가 두었는데 앵두빛이 우러나와 술빛이 그리 고울 수가 없다.
“오늘 다 바닥내고 가라. 병 비워서 새 술 담게….”
이렇게 해서 아끼고 아껴 두었던 술독은 거의 바닥나고, 나는 이제 새 열매로 다시 술 담글 준비를 한다. 1년 뒤 다시 찾아줄 친구들을 지금부터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