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부에서 예술인이자 당당한 여성으로 재탄생
여성사극 소재로 새로운 한류문화 콘텐츠 각광
화려한 이미지, 멜로 주인공 소비는 경계해야
두 작품은 '16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여인'(황진이), '몸은 천민이나 머리는 양반'(해어화) 등을 광고문구로 내세웠다. '술 따르고 몸 파는 여성'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벗고 조선시대 가부장 사회 속에서 신분질서를 넘어서는 삶을 살고자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생이라는 인물을 조명하기보다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제작의도가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북한작가 홍석중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황진이'는 황진사댁 하인 출신의 가공인물 '놈이'를 내세워 황진이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북한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때문인지 영화는 주인공들을 계급에 저항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양반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가식을 희롱하는 혁명전사가 된 것은 황진이가 아닌 놈이다.
관가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며 섬나라에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놈이는 홍길동처럼 스크린을 누빈다. 반면 황진이는 “내 발 밑에 세상을 두겠다”던 호기는 간 데 없고 놈이의 생사에 노심초사하는 여인일 뿐이다. 황진이는 놈이의 폭로에 의해 기생이 되고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또에게 마지막 자존심을 판다. 그리고 놈이의 죽음과 함께 먼 길을 떠난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한 여성의 삶과 당대 역사를 결부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여성인물들에게 연애나 사랑이 인생의 전환점인 양 그리는 것은 문제”라며 “남성감독이 연출한 데서 오는 한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뮤지컬 '해어화'는 '예기원'이라는 기생학교에 들어가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최고의 기생으로 거듭나는 여인 4명의 삶을 그린 창작뮤지컬이다.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의미로 예술에 조예가 깊고 몸을 파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일패 기생을 부르는 말. 양반 출신이나 모함으로 집안이 몰락한 주인공 소연은 일패 기생이 되면 왕 앞에서 독무를 출 수 있다는 말에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패 기생이 되려 한다.
'해어화'의 제작사인 장강엔터테인먼트 측은 “기생이 단지 술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엄격한 교육을 거치는 예술인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국악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을 접목해 독특한 한국 뮤지컬을 만든다는 게 제작사의 의도다.
드라마 '대장금'이 입증한 여성사극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한 다음 소재로 '기생'이 각광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적인 아름다움과 음악·춤 등 예술적 재능이 주는 화려함, 가부장제 사회에서 양반을 상대하는 유일한 여성이자 매력적인 멜로물의 소재인 기생이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의 삶을 그리는 데 있어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천박한 요부의 이미지로 그려지던 기생을 재조명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 기예 속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녀제도나 신분질서에 대한 비판 없이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만 그려지는 기생은 또 다른 눈요깃감으로 소모될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