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궁녀 ‘리진’
파란만장한 삶
명성황후 등 다양한 군상묘사도 볼거리
“리진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잊혀졌던 여성입니다. 그녀를 찾아내 새롭게 조명하는 일은 고되지만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신경숙이 6년 만에 장편소설 ‘리진’을 들고 돌아왔다. ‘리진’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모셨던 궁중무희로 역사 속 실제 인물이다.
초대 프랑스 공사의 마음을 첫눈에 빼앗은 리진은 공사와 함께 프랑스로 가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인 홍종우, 문호 모파상 등을 만나 교류하면서 점차 주체성을 가진 신여성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리진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정체성 혼란으로 결국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을미사변 등을 겪으며 자살한다.
저자가 리진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0년 전 프랑스에서 출간된 조선에 관한 책에서 ‘리진(Li Tsin)’에 대한 한쪽 반 분량의 기록을 본 뒤부터. 하지만 다른 데에서는 아무리 리진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가 창조한 리진은 슬픈 근대인의 초상이다. 아름답고 총명한 여자였지만 시대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작품에서) 리진을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대인들보다 먼저 서구 근대문물을 접했고, 자유롭게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신여성이었지만 여전히 한쪽 발엔 조선의 궁녀라는 봉건의 굴레가 씌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리진은 프랑스 남자와 3년을 살았지만 완전한 프랑스인이 될 수 없었고, 조선을 잊을 수도 없었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온 리진은 정신적 어머니였던 명성황후의 죽음을 목격한 후 독을 묻힌 불한사전을 한장씩 뜯어 먹으며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또 리진의 눈을 통해 명성황후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명성황후가 지닌 모순을 넘어 인간적 면모를 언어로 일구어놓고 싶었다”고 밝혔다.
공을 들여서인지 명성황후는 작품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쉰다. 저자는 “명성황후, 서씨, 강연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쓰느라 4년 정도가 걸렸는데도 이상하게 지치지 않는다”며 “곧 새 작품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 작품은 우리 시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저자는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