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만남도 소중히 다뤄야
UN콘서트 가고 반총장도 보고

동안 무거운 주제만 다루어 왔으니 이번에는 좀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유엔본부에서는 입구마다 경비직원이 드나드는 사람의 신분증을 항상 꼼꼼히 확인한다. 이런 경비직원 중에 랄프라는 이름의 흑인이 있다. 건장한 체구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수년 동안 고정적으로 1년에 몇차례씩 만나다보니 이제 드나들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아침에 회의장에 들어가다가 랄프에게 물어보았다. “사무총장님, 요새 계시냐”고. 하도 출장을 많이 다니시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나보고 “오, 예스” 하면서 며칠 뒤 금요일에 사무총장을 위한 음악회가 개최된다고 말했다. 의전실에 가면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사무총장을 위한 음악회라면 이미 지난 2월 초에 한번 참석했었는지라 그 훌륭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반기문 총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공연을 펼쳤었다. 그것도 바로 유엔총회장에서. 반 총장님의 인사말씀도 듣고, 회의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과 함께 멋있는 공연을 보면서 정말 가슴 뿌듯했었다.

그 뒤 이틀 동안 랄프는 내가 드나들 때마다 티켓을 구했느냐고 계속 물어왔다. 티켓 사무실에 가는 데 2분도 안걸릴 거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갔다.

사진에서 보는 유엔본부 건물 중 높이 솟은 부분(그 맨 꼭대기 38층에 사무총장실이 있다)의 2층에 프로토콜 사무실이 있었다. 가서 음악회 티켓을 달라고 하니 아무 소리 안하고 달라는 대로 2장을 주었다. 누굴 데리고 갈까 고민하다가 티켓 2장을 더 구해서 뉴욕대 법대에서 공부 중인 옛날 제자와 위스콘신에서 온 그 친구, 그리고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동료 위원 중에서 친한 사람 한 사람을 초청해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음악회에 참석했다.

연은 이번에도 정말 훌륭했다. 아시아 그룹의 이름으로, 특히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합동으로 마련한 자리였고,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스폰서를 맡았다. 역시 공연에 앞서 반기문 총장님의 감사 인사말씀이 있었다.

내 옆의 뉴욕대 유학생과 그 친구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유엔총회장에서 열리는 이런 콘서트에 참석한 것에 감격해 하고, 게다가 한국인 사무총장을 위해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것에 또 감격해 하고, 직접 반기문 총장님의 인사를 라이브로 듣게 된 것을 두 젊은이는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처음 연주는 한국의 젊은 유망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쇼팽 연주, 그 다음은 중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첸시의 연주, 그리고 한·중·일 단원들이 섞인 AAC(Asian Artists and Concerts) 대형 오케스트라가 일본인 야마다의 지휘로 말러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유엔합창단도 합류했다. 유엔에 합창단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공연 중간 휴식 15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반 총장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도 반 총장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나보고 왜 사무실에 한번 들르지 그랬느냐고 하셨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해가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설립된 지 25주년이 되어 7월 회의 때 기념행사를 하려고 하니 총장님께서 꼭 참석해 주시면 좋겠다고 요청드렸다. 그러자 “그렇게 하지요” 하고 시원한 대답을 주셨다.

물론 사무총장실을 거쳐 공식으로 요청이 가야겠지만 일단 총장님의 구두 허락을 얻었으니 훨씬 쉽지 않을까? 랄프에게 한마디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어 금요일 저녁 즐거운 밤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반 총장님께 7월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까지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기회를 잡으려면 건물 경비원하고 친해져라! 아주 사소한 일이 중요한 것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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