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적 …재활용 문화 활성화되길

지난 2003년 스페인의 펠리페 왕자와 레티시아의 약혼식에서 예비신부인 레티시아는 하얀색 슬랙스와 재킷이 조화를 이룬 멋진 정장을 입었다. 왕실 의상 치고는 상당한 파격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몇주 지나지 않아 유럽 거리에선 레티시아의 의상과 흡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가 레티시아의 약혼식 의상과 비슷하게 만든 옷이었는데, 자라는 당시 레티시아의 의상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던 소비자의 기호를 즉각 파악해 곧바로 시중에 내놓았던 것이다. 유행과 기호에 따라서 빨리 바꾸어 내놓는 옷을 말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음식의 패스트 푸드처럼 옷에도 패스트 패션이 있다.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즉각 반영한 옷을 말한다. 한때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인기였던 패스트 푸드가 웰빙 열풍으로 최근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사회가 점점 빠르게 변화하면서 그에 맞춰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슬로비족’이 유행이다. 하지만 패션에서는 얘기가 다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가는 대신 인터넷 의류 쇼핑몰이나 의류매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이들은 여기서 1만원 안팎인 티셔츠와 옷을 주로 사는데, 이들은 유행하는 옷을 비교적 싼 값에 사서 심지어 한두번 입고 버리기까지 한다. 언니 옷을 동생이 물려 입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패스트 패션은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보면 티셔츠 한벌에 1000원, 바지 한벌에 3000원 하는 초저가 상품을 비롯해 ‘옷 가격이 과자 가격보다 저렴한’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다. 이렇게 최신 유행을 쫓아갈 수 있고, 가격 부담이 없어 철 지나면 바로바로 바꿔 입을 수 있으니, 한창 멋내기 좋아하는 10대와 20대 여성이 열광할 만하다.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신 유행 스타일의 옷을 싸게 살 수 있고, 업체로서는 빠른 회전으로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패스트 패션을 생산하는 곳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옷을 조금만, 그러나 빨리 만들어, 빠르게 회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한철만 지나면 대부분 그냥 버려지면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계에서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쉽게 입고 버리는 이른바 패스트 패션이 갈수록 대중화됨으로써 환경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케임브리지대 보고서가 밝힌 바 있다. 재활용되지 않는 옷들은 일반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그런데 소각할 경우 유해물질은 물론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 패스트 푸드가 건강의 적이라면 패스트 패션은 환경의 적이다. 입지 않는 옷을 기증하거나 재활용하는 문화가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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