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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서강대 여성학 강사

중국의 여성 영웅설화인 〈뮬란〉이 디즈니의 손을 빌어 영화화한

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감과 씁쓸함이 뒤얽혔다. 어느 정도 탈가부장

적이며 쉽게 보여줄 수 있으며 동양문화권의 신화를 어린이용 판본

을 하나 갖게 되었다는 것은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

로는 결국 동양(중국)의 신화마저 미국자본의 손을 빌어 세계화하고

마는구나 하는 씁쓸함이 들었다.

이같은 양가감정을 갖고 본 뮬란은 한 마디로 괜찮았다. 딸과 여조

카에게는 보여주고 싶던 여성영웅을 속시원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완벽히 ‘속시원하게’는 아니었다. 여성의 탈가부장적 소망은 선

한 중국(중심)과 나쁜 오랑캐(주변)라는 가부장제의 이분법의 틀을

깨지 못한 채 표출되고 있다).

뮬란과 같은 여성영웅 설화나 소설에서 우리는 여성문화의 두가지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첫째는 통합적 존재/삶에의 욕구이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 출산, 수유의 능력을 타고 난다. 소수의 여성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성에게 ‘어머니임’은 필연적이다. 이 필연성은

여성 개개인의 ‘어머니임’에 대한 가치관, 태도 그리고 사회구조

의 성격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필연적 선택으로

체험될 수도 있고 정반대로 저주스러운 필연적 숙명으로 경험될 수

도 있다.

가부장제는 여성으로 하여금 ‘어머니임’을 보다 후자 쪽으로 경

험하게 하는 구조이다. 즉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온 방면으로 열려있

는 존재의 통합성을 망각한 채 오로지 ‘애 낳아주러 온 년’이라는

천대받는 어미역할에 고착케 한다. ‘마님’의 대접을 받는 양반 계

층의 여성들은 천대받는‘년’의 지위에서는 벗어난 듯하나, 그에게

가해지는 시공간적 구속은 보다 더 억압적이다. 뮬란의 이야기가 뮬

란과 뮬란을 이 구속적인 시공간으로 집어넣고자 하는 중매쟁이와의

갈등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둘째 특징은 ‘지혜로운 여성상’이다. 여성영웅은 중국 무술 영화

가 보여주는 남성 영웅처럼 전무후무한 칼솜씨, 활솜씨, 무술솜씨로

이기지 않는다. 애초부터 전통적인 싸움의 기술은 남성문화 속에서

갈고 닦아져 온 것이기에 이것으로 여성은 이길 수 없음을 잘 안다.

여성은 여기서 가부장제가 삼켜버린 지혜의 여신을 불러낸다. 뮬란

이 눈사태를 일으켜 수십 명의 아군과 인산인해의 호족의 대결을 아

군의 승리로 이끌거나 기지를 써서 황제를 구해내는 대목에서 뮬란

은 지혜의 여신기도 하다.

뮬란이 황제의 친위대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사양, 귀향하고 이어

뮬란의 대장이 뮬란의 잘생긴 신랑감으로 뒤따라 오는 것으로 영화

는 종결된다. 결국 뮬란의 영웅담도 잘 난 신랑을 얻는 것에 종국적

의의를 두는 것으로 끝나는 진부한 신데렐라 각본의 변형이라고 비

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비판에 앞서 여유를 가져봄직 하다. 뮬

란이 보여준 탈 고정관념적 어머니와 마님으로서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을 오늘날의 여성주의 작가의 남겨진 몫으로 받들이는 여성 작가

가 있다면 뮬란의 결말은 실패한 결말은 아닐 것이다.

김정희/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 서강대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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