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커플과 함께 ‘생활속 성년식’ 필요
여문필 성균관 예절학교 사무총장은 “성년이란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법적·사회적 권리를 지닌 성숙한 사람으로 자기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정의하면서 “성년식은 ‘성년’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의식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고려시대부터 행해져온 우리의 전통 성년례를 보면, ‘성년’이 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남자에게는 ‘관례’라 하여 15~20세 사이에 관을 쓰게 하고, 여자에게는 ‘계례’라 하여 15세가 되면 머리에 쪽을 지고 비녀를 꽂아주었는데, 특히 남자는 관례의 절차를 마치면 평생 쓸 이름과 자(字)와 호(號)를 가졌고, 결혼할 자격과 벼슬길에 오를 권리도 갖게 됐다. 이때부턴 부모도 자식에게 존댓말을 사용했고, 마을 어른으로부터 어른과의 대화법이나 행동지침 등을 교육받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 성년례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1973년부터 정부가 제정한 ‘성년의 날’(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이 되면 문화관광부에서 마련한 ‘표준성년례절차’에 따라 평상복·외출복·관복으로 갈아입는 ‘삼가례’와 술 마시는 법도를 배우는 ‘초례’ 등으로 간소화하여 지방자치단체나 학교 등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대사회에서 전통 성년례를 재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기숙 신라대학교 가족·노인복지학과 교수는 “아름다운 전통은 계승돼야 하지만, 현대의 삶의 양식과 동떨어진 채 단순히 전통의 것을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현실적으로 ‘성년’이 되는 것에 대한 각오와 미래의 비전을 세우는 등 구체적인 삶의 계획을 설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부모의 보호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일명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 “부모와 자녀 서로가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부모와 함께 성년식을 치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민자 청년여성문화원 이사장도 현실성 있는 성년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빨라 중학교 때부터 이미 어른의 몸을 가지기 때문에 20세에 성년식을 하는 것은 너무 늦는다”며 개개인에 따라 성년식을 하는 것을 제안했다.
여자아이의 경우 생리를 시작하거나 남자아이의 경우 변성기에 접어드는 등 어른이 되려는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자연스레 진행되는 성년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와 함께 진 이사장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또래 아이들을 모아서 성교육이나 예절교육 등을 해주며 함께 기념해주는 것도 현대사회에 맞는 성년식의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신체적으로는 이미 성년이 돼버렸지만 다가오는 ‘성년의 날’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려는 젊은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 나이 21세, 만으로 20세가 된 대학생 신선아씨는 성년의 날을 앞두고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갓난아기 때부터 올해 초까지 지금껏 그가 살아온 삶을 사진첩으로 정리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어린이이자 청소년으로서 겪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론 더 책임감 있고 성숙한 ‘어른’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할 것”이라며 “성년의 날엔 사진첩을 제작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진경씨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는 “성년이 된다는 것은 ‘부모’라는 보호자의 그늘 아래에서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지 않느냐”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갑내기 커플인 이지연씨와 김석우씨는 장미꽃과 향수 대신 셀프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리더십 관련 서적을 교환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진민자 청년여성문화원 이사장은 “축제적인 성격 속에서도 ‘성인’이 된다는 책무감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수반돼야 진정한 ‘성년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각국의 이색 ‘성년식’
‘성년식’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든지 탄생·성인·결혼·죽음 등의 통과의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고, 그 중에서도 독립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인식’은 더욱 특별히 여겨지고 있다.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는 세계 각국의 ‘성년식’을 소개한다.
그밖에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선 소년과 소녀의 뾰족한 송곳니를 가지런하게 자르고, 아마존강 유역의 티구나족은 소녀의 머리카락을 모두 뜯는 의식을 치른다. 남태평양 펜테코스트섬 원주민 마을은 소년이 발목에 포도넝쿨을 감고 30m 정도 높이의 탑에서 뛰어내려 땅 위 1m 정도 높이에서 멈춰야 하는 등 이색 성년식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