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과 어머니의 만남

나는 여성신문을 창간할 당시 여성신문의 창간 전 준비단계부터 지켜보아온 특별하다면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88년 남동생이 갑자기 가버리자 어머니는 부산 우리집에 와 계셨다. 가족의 생일날 말고는 딸네 집에 오시지 않던 어머니다. 외아들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 다시 글을 쓰실 수 있을까, 사회적인 활동을 다시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루하루 생존하시기가 조마조마할 때였다. 그때 부산까지 어머니를 찾아 청탁을 하러 온 분이 바로 고정희 시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여성신문의 발기 동인이었고 초대 주간이었던 고정희 시인이 어머니를 뵈러 우리집에 왔던 때를 잊을 수 없다.

나에게는 우리집에 어머니 손님이 오셔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묵고 간다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결국 어머니와 손님이 한방씩, 우리 가족 넷이 몽땅 한방에서 잤던 것 같다. 

나는 먼 데서 온 손님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잠자리를 챙기는 것, 그것만 생각했던 것 같다. 고정희 시인은 여성신문 창간을 위해 작가한테 연재소설을 부탁하는 것만 생각했으리라. 어머니는 참척의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고통으로 지내실 때였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도 고정희 시인은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한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그때 일이 생각나는 것은 50대 후반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작가 어머니, 독신이었던 고정희 시인, 그리고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나,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살아냈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져서다.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이미 40대가 훌쩍 지났건만 <40대>란 시를 쓴 고정희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