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전망 좋은 공중화장실
아름다운 공중화장실 늘어나지만 일방적 청결은 아닌지
내가 사용한 후 더 깨끗해지는‘공중문화’기대
전망이라면 나는 서울 종로 네거리 종로타워빌딩 꼭대기 화장실을 첫손에 꼽는다. 몇년 전 처음으로 이 빌딩 꼭대기 식당에 갔다가 “화장실에 한번 가보라”는 동행 친구의 말을 듣고 일부러 들어가봤었다. 아! 갑자기 툭 터진 빌딩 전망에 넋을 잃고 한참을 그냥 서있었다. 33층의 전면 유리창을 통해 종로 일대와 멀리 남산과 동대문 너머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도심의 경치. 한가운데 3명이 함께 손을 씻도록 해놓은 원형의 큰 세면대가 이 도시적인 전망과 어울려 나를 압도했다. 요즘도 어쩌다 들어가보는데 그때마다 새롭게 감탄하게 된다. 밤과 낮 두루 볼 만한 나의 서울 명소 중의 하나다.
사실 나는 아직도 공중화장실 가기를 겁내는 구세대다. 어릴 때부터 더러운 화장실에 몸서리친 경험들이 남아 있어 웬만해선 집밖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는 체질이 돼버렸을 정도다. 소풍 길에 하루 종일 가지 않아도 끄떡없었고, 식당이나 휴게소에서도 가능하면 화장실에 가지 않는 편이다. 여행 떠나면 물을 적게 마시는 것도 습관이 돼버렸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지난 10여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좋아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중화장실의 변화일 것이다. 몰라보게 깨끗해지고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 됐다는 사실을 피부로 익혀가고 있다.
올림픽이며 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우리의 생활문화 가운데 업그레이드된 것 중 첫손에 꼽을 만하다. 곳곳에서 ‘아름다운 화장실’ 대회가 열리고, 화장실 가꾸기 단체들이 생겨났고, IT화장실 등 이 분야를 신한류로 발전시켜 세계의 화장실 선진국이 되자는 제안도 나왔다.
꽃이 있고, 음악이 흐르고, 분수가 있고, 정원이 차려진 공중화장실에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오히려 당황할 때도 없지 않다. 너무 장식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누가 사용하고 나오면 금방 들어가 청소하는 사람을 상주시킨 곳이 있다는 소식엔 마음이 무겁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청결을 유지시켜야 하는 것인가 고개가 저어진다.
공중화장실에 대해 내가 수십년간 잊지 않고 떠올리는 생활매너가 있다. 일본의 한 여성 칼럼니스트가 1950년대 유럽에 머물면서 쓴 책 속에서 “유럽에선 기차 화장실이 출발할 때보다 종점에 다다랐을 때 더 깨끗하다”면서 부럽게 지적한 대목이다. 저마다 사용한 뒤 깨끗이 닦고 청소하니까 점점 더 깨끗해지더라는 유럽의 공중문화.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은 유럽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러나 나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 대목을 떠올리며 적어도 내가 들어와서 더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특히 비행기 속 화장실에선 ‘이 이상 더 깨끗할 수 없다’고 혼자 으쓱해 하면서 제발 다음 사람이 봐주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치워놓곤 했다.
30여년 전 읽은 책 한 구절의 영향이다. 그 구절 때문에 이따금 나 자신 공중시설을 어떻게 쓰고 있나 반성해보는 습관도 생겼다.
몰라보게 깨끗해진 우리의 공중화장실. 이제는 쓰는 사람들의 매너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에 감탄할 차례가 아닐까. 작고하신 건축가 김수근 선생은 “멋진 카펫이 깔려 있는 곳에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은 없다”고 쓴 적이 있다. 환경이 깨끗해지면 매너도 달라진다는 말씀에 기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