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주기만 한 그 친구
4월 초 뜨락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이른 아침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뜨락 가득 매화 향으로 가득 채워놓고 살포시 웃던 너, 흐드러진 꽃 아래서 매화 서너 송이 찻잔에 띄워놓고 그 향에 취해 온갖 호사를 부리게 하던 너, 꽃 지면 열매 맺어 항아리에 매실 켜켜이 앉혀 설탕 재워두면 두달 반 후 진한 원액 뿜어주어 여름 내내 두고 갈증 날 때 소화 안될 때 엄마 변비로 고생할 때 한잔씩 따라 마시면 바로 효과 보는 가정상비약으로 효자 노릇하던 너, 원액 거르고 매실 남은 항아리에 그대로 소주 부어두면 한달 뒤 향 가득한 매실주로 다시 탄생하여 가을 햇살 따뜻한 날 다정한 이 멀리서 찾아오면 자랑하며 한잔씩 따라놓고 앉아 있으면 술보다 그 향에 먼저 취해 모든 것 아름답게 보게 해주던 너…. 그러고 보니 너로 인해 1년 내내 나는 행복했었던 거다.
새삼 놀라면서 뜨락을 둘러보니 어찌 매화뿐이랴 싶다. 감나무는 어떤가. 5, 6월 새 잎 따서 차로 만들어 두면 1년 내내 레먼의 20배라는 비타민C 공급원이 되고, 열매 익으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어머니 좋아하는 연시 되어 기쁨 주고, 껍질 깎아 줄줄이 널어두면 보기는 얼마나 좋은지…. 꾸덕꾸덕 마르는 대로 하나하나 빼먹으면 꿀보다 달콤한 간식거리로 재미나고, 말린 곶감 냉장고에 넣어두고 명절이면 수정과 곶감말이로 별미 음식 만들면 일품이고…. 먹거리 풍성하게 해주는 감나무 또한 버릴 것 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인 것이다.
어느 사람이 이렇게 조건 없이 주기만 하면서 1년 내내 기쁨만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기만 하면서 산다.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식물에 대해 늘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도시에 살면서는 느낄 기회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시베리아 호랑이 숲에 사는 원주민들은 호랑이를 ‘호랑이’라 부르지 않고 ‘그 사람’, ‘그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보아야만 그 사랑,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한번 주변을 둘러보며 나무에게, 풀에게, 흙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