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인식 기회 노려라

발레 ‘호두까기인형’(The Nutcracker)은 세계 큰 도시들의 겨울을 나타내는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가족 관객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이 고전 발레 공연을 보러 나섰다면 때는 십중팔구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호두까기인형에서 주인공 클라라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로부터 호두까기인형을 선물로 받게 된다. 입에 호두를 넣으면 쉽게 호두를 깔 수 있는 인형이었는데, 클라라의 오빠가 인형의 입에 호두를 많이 넣어 한번에 깨려다 인형의 입이 망가지게 되자 클라라가 이를 슬퍼하다 호두까기인형을 품에 안고 잠에 빠져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891년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발레 음악이다.

이보다 한 세기 전 영국에는 J M 샌드위치란 이름의 백작이 있었는데, 식사시간도 아끼며 트럼프 놀이에 열중하자 이를 보다 못한 하인이 육류와 채소 등을 빵 사이에 끼워 넣어 트럼프를 치면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고안해냈다. 이 음식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가게 됐는데, 이후 백작의 이름을 따서 샌드위치란 이름이 붙게 됐다.

봄꽃들이 앞 다퉈 눈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계절, 크리스마스 발레로 알려진 호두까기인형과 몇 세기 전의 한량 백작 얘기라니, 좀 느닷없다 싶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계 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끄떡이리라 본다.

국내 대표 기업들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정체되는 등 잠재성장률이 4%대로 고착화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최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우리 경제상황을 샌드위치에 비유하면서 한국 경제가 5∼6년 후 커다란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일본 등 선발 국가와 중국 등 후발 국가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래커(호두를 까는 기구) 속에 끼인 호두 같은 상황이 됐다며 ‘넛크래커 위기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의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앨런 & 해밀턴에서 이미 우리나라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서 마치 넛크래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고 지적한 바 있어 넛크래커란 단어가 그리 낯설지만도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을 대표하는 주력산업인 전자와 자동차가 동시에 위기에 처해 있다는 재계 총수들의 진단이 잇따라 나오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샌드위치론이나 넛크래커 위기론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관은 의욕을 상실시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애써 잠재우기엔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위기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범국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