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이’ 고려한 법이 가장 좋은 법”
‘무조건 똑같이’ 말고 ‘결과적 평등’을
성인지 교육이 ‘좋은 법 보는 눈’ 기른다

“누가 봐도 명백한 성차별적인 법령은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건 겉으로는 무성적이고 중립적이어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평등한 결과를 낳는 법에 대해 민감해지는 일입니다. ‘무조건 똑같이’가 아니라 남녀의 차이를 고려한 법일 때 결과적 평등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취임 2주년을 넘긴 김선욱(54) 법제처장이 360개에 달하는 성차별 법령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법이 의도적으로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남성과 여성이 처한 현실적 차이를 법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평등하고 균형 있는 사회로의 진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논란이 되고 있는 민법 781조에 대해서는 “2008년부터 어머니의 성도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처장이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일 작업은 성별영향평가처럼 법이 성별에 따라 어떤 파급효과를 갖는지를 분석하는 ‘입법영향평가제도’ 도입의 추진이다. 오는 2009년까지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1980년대부터 시행해온 이 제도는 ▲법을 만들 때 정말 필요한 법인지 사전평가하고 ▲사회적 효과와 비용 등을 고려해 법안 내용을 만들며 ▲시행 이후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수정·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실과 따로 노는 법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미치는 법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다음은 지난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선욱 법제처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최고위직에 여성이 있으면 조직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하던데, 지난 2년 동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좋은 법’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직원들 말이 법령심사를 할 때 예전에는 ‘형식적인 평등’을 골라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성인지 교육을 받은 이후부터 ‘결과적인 평등’까지 보려는 습관이 생겼다고 하더라. 교육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굉장한 보람을 느꼈다.

특히 지난 2005년 5월 ‘성인지 통합과정’을 주제로 이화리더십개발원에서 개최한 제1회 워크숍은 직원들의 성인지적 민감성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조형, 이상화, 김은실교수 등 쟁쟁한 여성학자들과 함께 직원들이 열띤 논의를 벌였다.

또 제도적인 안착을 위해 지난해 12월 법령 입안심사기준을 10년 만에 개정해 성별영향을 고려한 성인지적 관점의 법령 심사 기준을 만드는 성과도 있었다.”

-올해 주요 업무계획으로 성차별적 법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나.  

“해당 부처에 의견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많은 법령이 개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60개라고 해도 비슷한 범주끼리 덩어리로 묶으면 많지가 않고, 내용도 남성이나 여성을 이유 없이 배제하거나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등 ‘명백한 성차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녀가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민법 제781조를 개정하는 것은 더 검토가 필요하다.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고, 2008년부터 어머니의 성도 쓸 수 있게 절반의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여론 흐름을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중요한 문제이고 민법을 개정할 기회가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지금 촉각을 다투는 시급한 현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입법영향평가가 실시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간접적인 차별이 상당수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직장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가사를 병행하다 직장을 포기했다. 하지만 입법영향평가가 도입되면 남녀에게 똑같은 근무시간과 휴가제도를 적용했을 때 여성이 낙오될 수 있다는 결과적 차별을 예상할 수 있다. ‘적극적 조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불합리한 제도와 사회구조는 법을 통해 개선되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늦어도 오는 2009년에는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알기 쉬운 법률안’ 38건이 통과됐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법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법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자기와는 먼 것이라고 생각했고, 법을 몰라 피해를 입거나 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국민 누구나 원하는 법을 쉽게 찾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친밀도가 높아져 법을 지켜야겠다는 의식도 높아질 수 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추진하는 이유다.

법률이 쉬워지면 판결문이나 공문서, 보험약관도 쉬워지는 확산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 관련법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제정된 것이 많은데 ‘성인지’나 ‘젠더’ 등 외래어나 어려운 개념이 많다. 개정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가장 좋은 것은 법에 명문화되기 전에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지만, 속도가 안맞으면 이미 굳어져버려 나중에 고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미처 여성 관련법까지는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앞으로 관심 있게 보겠다.”

김선욱 법제처장의 유일한 취미는 매주 북한산에 반강제(?)로 오르는 일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자신을 위해 매주 친구들이 찾아온 것이 벌써 2년째다. 김 처장은 “취임한 후 지금까지 개인생활을 갖지 못했는데 등산이 거의 유일한 사생활이 됐다”며 “덕분에 학교 다닐 때보다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난다”고 전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김태응 법제처 정책홍보담당관은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법제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남성 사진만 올렸는데 처장님이 오신 직후 바로 여성도 함께 있는 사진으로 교체됐다”며 “첫 여성 법제처장의 힘을 실감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김 처장은 “처음 법제처에 부임하면서 내가 바로 여성정책담당관이라는 생각으로 왔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법제처에도 여성정책담당관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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