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육백 살 은행나무
마을의 수호천사

우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령이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특이하게도 나무 한가운데에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어느 날 은행나무 구멍으로 느티나무 씨앗 하나가 날아 들어가 발아한 것이리라.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한 나무로 자라는 신기한 이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굳이 천연기념물이 아니더라도 그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안녕과 복을 지켜주는 나무로 숭배해 왔고, 정월이면 날을 잡아 목신제를 올리고 있다. 목신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민속신앙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큰 나무에 형형색색의 종이와 헝겊을 걸고 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는 행사다. 옛날 우리네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마을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고 동네의 기둥으로 삼아 의지하였다. 지금은 개발이다 현대화다 하여 도시에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도 시골 동네에서는 이 나무들이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해주고 있다.

목신제는 제 지내는 모습이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듯하다. 사전에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민속신앙이라 했지만 우리 동네 은행나무의 목신제는 정월 초하루와 보름 사이 좋은 날을 잡아 해가 진 후에 제를 지내고 있다. 금년에는 음력 정월 초열흘날(양력 2월27일) 있었다. 원래는 그 전 주에 잡혀 있었는데 윗 동네에 초상이 나 한주 뒤로 미루어진 것이다.

제 올리는 날 아침부터 부녀회에서는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들은 온 동네를 깨끗이 청소한 후 나쁜 기운이 들지 않게 동네 입구와 은행나무 주변에 금줄을 친다. 해가 지면 우선 정화의식이 시작된다. 먼저 동네 우물로 가서 제를 올린다. 이 샘물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그 옛날에는 온 동네가 이 우물 하나에 의지하며 살았을 것이니 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샘물에 올리는 제가 끝나면 은행나무 앞에 제상이 차려지고 동네 사람들이 예를 갖추어 자리하면 법사는 액막이 소리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은행나무 목신께 비나이다.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주민들은

오곡제물을 진설하고 온갖 정성 올리오니

저희 정성 받으시고 동서남북 살피시어

가가호호 인간 액을 막으시고

농사 풍년 들고 가축 질병 없게 하여

일년 내내 다 가도록 무사하게

목신께서 도와주셔 만세토록 복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을 대표가 축문을 읽고 초헌관이 술을 올린다. 목신제는 술을 한잔만 올리는데 이유는 목신은 살아있는 신이기 때문이다. 법사는 국태민안, 동네 안녕을 빌고 이어 주민 가가호호 이름을 부르고 안녕과 축원을 빌어주고 소지를 올린다. 우리 마을은 총 스물다섯 가구, 제일 웃어른부터 일일이 흉을 쫓고 복을 빌어준다.

“삼·사월에 건강을 해할 수 있으니 멀리 가지 말고

성질만 죽이면 집안 두루 편안하겄네…”

둘러선 사람들은 법사가 빌어주는 축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좀더 큰 복을 원하는 사람은 떡시루 위에 걸쳐 있는 북어 입에 지폐 돌돌 말아 물려놓고 다시 한번 절을 올린다.

나도 은행나무 신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우리 식구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마음의 번뇌 만들지 말게 해주시고,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게 해주세요.“

동네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제상에 올렸던 시루떡 한 조각씩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액막이를 하고 올 1년을 새롭게 다짐해본다. 굳이 은행나무가 특별한 복을 내려주지 않으면 어떠리. 여름이면 동네 가운데 큰 그늘 만들어 고된 삶의 땀을 식혀주니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은행나무는 허점 많은 인간들이 그 모자람을 채워달라고 비는 수많은 염원을 600년 동안 묵묵히 받아주고 있는 우리 동네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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