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끓어 넘치는 것 ‘막기’
또다른 용도 알고 새삼스레 ‘깜짝’
고정관념 깨면 색다른 세상 보여

내 머리가 너무 굳어버린 거 아닌가? 광화문의 한 문구점 앞 ‘2000원 균일’ 판매대에서 발견한 조그만 스테인리스 찜판 하나가 한참동안 나를 반성시켜 주었다. 

아, 이거 나 필요한데…. 전에 써본 것이라 우선 반가웠다. 적은 양의 채소나 만두를 찔 때 아주 간편하고, 씻기도 편해서 좋아했던 물건이다. 친구가 탐을 내서 주어버렸는데 다시 욕심이 났다. 여기 것은 일본제였다.

집에 와서 사용법 사진을 보니 조금 이상했다. 위 사진은 냄비 크기에 관계없이 잘 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아래 것은 찜판을 뒤집어 3개의 받침대를 보여주는 것이라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으레 붙어 있는 받침대고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닌데 왜? 그제야 안내문을 들여다봤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어림짐작으로 읽는 수준인데 아이고, 찌는 것과 냄비요리에 각기 앞뒤쪽을 두루 쓸 수 있다고 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래 것은 찌개 위에 얹혀 있었다, 찌개가 끓어 넘치는 것을 막는 데 이것을 뒤집어 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우와- 그랬구나, 순간 움찔했다.

자세히 용도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물건을 산 나의 매너도 창피했지만 무엇보다 이것을 전에 써봤으면서도 한번도 찜판 이외의 용도를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정관념에 굳어있는 나,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오래 전 그리스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여배우 정치인 멜리나 메르쿠리(1920~1994)를 인터뷰하러 그의 아파트로 찾아갔을 때였다. 분명 4층이라면서 경비원에게 안내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4층에는 문이 없어 내릴 수가 없었다. 다시 경비원에게 돌아와 물었으나 틀림없다면서 4층을 눌러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세번을 되풀이한 끝에 내가 알아낸 것은 엘리베이터 문이 내 뒤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만 해도 손으로 문을 열어야 되는 구식 엘리베이터라 4층에 멈춰도 저절로 문이 열리지 않아 나는 앞만 보고 있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등 뒤에 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의 노예인지 그때 정말 황당하게 체험했었다. 요즘이야 예사롭게 됐지만 그 몇년 뒤 영국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가 내릴 때 반대쪽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찜판이 오랜만에 그때를 떠올리게 해주었고 여전히 굳어 있는 나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실망, 반성.

물건 하나로 여러 가지 쓰임새를 생각해보는 것, 그것은 제품 디자이너의 몫인 동시에 소비자의 매너이기도 하다. 물건 하나에 꼭 한가지 용도만 떠올리는 것은 이 시대에 커다란 낭비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덕분에 나의 부엌용품들을 다시 보기로 했다. 혹시 생산자도 생각하지 못한 쓰임새는 없을까 하고.^^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