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난방·배선·배관 설치하니 오장육부 처럼 집에 ‘생기’

과실들이 마당에 나뒹굴고 새들과 엄동설한에 굶주린 날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있던 그 해 겨울이었다. 건축업자가 부리는 일꾼 서너명의 손길로 기초, 벽체, 바닥 및 지붕 골조공사까지 이루어졌다. 여기까지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레미콘 차가 콘크리트를 붓기로 한 날,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고, 일꾼 한사람을 일시적으로 고용했는데 손해만 보고 공사에 아무런 도움이 못된 적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축업자가 수시로 일꾼들을 다른 공사현장으로 빼돌려 우리 공사의 진전을 막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공사라면 한국에선 식은 죽 먹듯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한국의 빠르고 야무진 공사 패턴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또 하나 신경에 거슬렸던 것은 일꾼들의 작업속도와 시간엄수 문제였다. 느슨한 작업속도는 그네들의 패턴이기 때문에 불평도 못하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시간제 일꾼으로 고용했으므로 그들의 작업시간 엄수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처음엔 문제가 없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금 지불에 있어서는 실상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집짓기 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일매일 공사일지를 작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중에 건축업자와 결제문제와 관련해 애매모호한 이견이 있을 때 유용한 근거자료가 되었고, 전기 배선작업을 의뢰했던 회사와의 결제문제에 있어서도 손해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그동안 작은 사고도 있었다. 일꾼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스웨덴 겨울의 아침 7시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캄캄한 밤인 셈이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우리는 전날의 무리한 노동으로 늦잠을 자고 있는데 바깥으로부터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사고라는 명백한 직감이 들었다. 우리는 무작정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일꾼의 차가 눈이 녹아 얼어붙은 경사진 마당을 내려오다 부주의로 미끄러지면서 우리 집에 충돌한 것이다. 다행히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집도 그리 큰 손상이 없었고 에어백이 터지는 바람에 인명 피해도 없었다.

지어진 집 껍데기에 내용을 채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상·하수도를 배설하고 전기와 난방을 배선, 배관하고 공기순환을 위해 환기장치를 고려했다. 그리고 중앙진공청소기 설치를 위한 배관도 이루어졌다. 바로 이러한 작업들이 ‘집’이란 공간을 살아있게 하고 기능하게 하는 유기체의 핏줄이며, 오장육부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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