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들 “그 분은 우릴 해방시켰다” 애정
나환자에 각별한 관심…자립사업 펼치며 아픈곳 어루만져

육영수 여사의 한센병(나병) 환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잘 알고 있는 신정하 ‘새빛’ 전 발행인의 증언은 육 여사의 면모를 가장 단적으로 잘 드러낸다.

신씨의 말에 따르면 여사는 한센병이 치료되어도 이들과 이들의 정착촌을 꺼려하는 사회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사는 매달 한센병 환자 사업기관지 ‘새빛’ 3000부를 청와대 봉투에 담아 영부인 육영수의 이름으로 전국 관공서와 우체국 등에 꾸준히 배달케 했다. 자연히 ‘나환자’에 대한 사회 인식과 태도는 개선되어 갔다.

한센병 환자 정착촌에는 관계자 3~4명만 동행하곤 했다. 그러나 사회가 꺼려하는 이들에게 육 여사의 방문은 큰 활력소였다. 육 여사는 이들의 자립사업으로 “돼지는 회임기간이 짧아 그 해에 비용을 뽑을 수 있고 부녀자, 병약자의 농가 부업으로 적절하다”고 판단, 양지회를 통해 총 78개 정착촌 중 우선 37개소에 씨퇘지 470마리를 보냈다.

원내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월간지 ‘새빛’ 지령 100호를 축하해 손수 육 여사가 써준 휘호.
▲ 원내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월간지 ‘새빛’ 지령 100호를 축하해 손수 육 여사가 써준 휘호.
신씨는 “농원들의 짜임새 있는 개발계획을 보거나 잠업마을의 계획 초과달성에 대해서는 기쁜 마음을 표했고, 수익성에 대한 조언도 늘 자상했다”고 기억한다. 강원도 원주 경천농원에 당도해서는 판로를 잃고 있는 1000여만원어치의 계육을 도당국과 군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활로를 트고, 전북 익산 상지원 방문시는 2년 만에 새끼를 볼 수 있다는 소 사육 생계방편을 듣고 50마리분의 무담보 융자를 바로 해결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환자들의 두 손을 어루만지며 살림살이를 같이 걱정하고, 그들이 내놓는 고구마도 같이 나누어 먹는 ‘가식 없는 어머니’ 같았다. 악수를 피하는 미감아 아이에게는 육 여사가 더 다가가 손이며 볼이며를 만져준다. “험상궂은 상처와 볼품없이 문드러진 손까지 일일이 잡아주시는 것을 보고 어찌 감격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씨는 육 여사의 행적을 영부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억한다.

육 여사는 전국 정착촌민을 깨우쳤다. “진정한 정신을 갖는 인간회복을 내 안에 정립시켜 생활의 자리를 여러분 스스로가 쟁취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숙명처럼 살아온 빈곤과 수모와 질병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쓰고 “이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인내와 용기와 땀이 요구된다”고 독려한다. 또 “잘못 없이 주위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는 직접 청와대로 연락해 달라”며 그들의 디딤돌임을 자처했다.

신씨는 “그 분은 우리를 해방시키신 분이다. 생전에 큰 사랑을 받았던 환우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센인협회 회원들은 육 여사의 공덕비를 소록도 양지회관에 마련하고, 34년째 변함없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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