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다 해외서 더 유명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세계 각국 연대시위·미 하원 결의안 제출 등 쟁점화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다. 미봉책으로만 대처해오다보니 일본 정부는 국제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막느라고 괴로울 것이다. 진작에 해결했다면 이런 괴로움을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처음 한국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한 1988년 이후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일본은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제적 망신을 계속 당하고 있다. 사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국제적으로 훨씬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미국 하원에서 다뤄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결의안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되어온 국제적 문제제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일본 정부 입장을 개관해보면, 일본이 얼마나 자국의 처참했던 인권유린에 무책임한지 증명이 된다. 처음에는 완전한 부정이었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는 일본 정부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 ‘민간업자’가 한 것이고, ‘위안부들은 돈 벌러 간 것’이라는 억지를 폈다. 그러나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와 운영에 관한 역사적 문건이 발굴되어 일본 정부의 개입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2단계로 입장이 바뀐다. 즉 ‘일부 군의 개입은 있었지만 강제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강제가 없었다는 말에 생존 피해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럼 우리가 제 발로 자원해서 갔단 말인가” 하고. 그러자 일본 정부는 ‘강제가 일부 있었다’는 것으로 다시 한발 후퇴했다.

3단계는 이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소위 ‘아시아여성기금’과 이를 둘러싼 공방이다. 일본은 국제적으로 이 기금을 적극적으로 선전했고, 피해자들이 이 위로금을 받도록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거부가 이어지자 위로금은 처음의 1인당 2백만엔에서 5백만엔으로 증액되었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필리핀 피해자의 거의 전원(1명만 제외), 그리고 한국 피해자의 일부가 이를 받았다.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배상과 혼동해서 일본이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아시아여성기금은 민간기금으로 위로금이고, 잘못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배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국제법을 위반한 사실을 부정하고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은 그동안 세 갈래로 진행되어 왔다.

첫째는 일본 법원에 피해자들이 제소하는 것. 물론 모두 패소로 결론이 났다. 둘째는 유엔 인권위원회, ILO(국제노동기구),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유엔 시스템 하에서 작동하는 국제무대에 제기하는 것. 이러한 기구에서는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했으니 정부가 배상하라는 보고서가 이미 10년 전에 나왔으나 일본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셋째는 미국 연방법원에 제소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미·일 동맹관계로 인하여 미 연방대법원이 심리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5년 반 동안의 소송이 2006년 3월 종결되었다.

일본의 책임회피에 대한 우리의 최대 무기는 국제연대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을 도쿄 한복판에서 개최하여 10개국이 힘을 합쳤고, 히로히토 일본 국왕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국제연대의 틀은 그 이후 계속 넓어져서 3·1절과 8·15에 동시다발로 하는 국제연대 시위, 2005년 국제엠네스티의 일본군 ‘위안부’ 보고서 발간, 2006년에는 v-day의 ‘일본군 위안부에게 정의를’을 주제로 한 순회 캠페인이 이어져 왔다. 금년 1월31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다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제출된 것은 답답했던 상황에 물꼬를 틔워주는 한 줄기 희망이다. 특히 일본계의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이 앞장을 선 것은 정말 반갑다. 결의안이 채택되고 일본 정부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역사적 책임을 지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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