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안전성·형평성 고려” vs “죄질 나쁠수록 시효 배제 우선” 팽팽
형사소송법 개정안 2년째 낮잠…공청회조차 없어 입법노력 절실

반인륜 극악범죄에 대한 현행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배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찬반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범죄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은 “범죄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차등적으로 기간을 연장하거나 배제할 필요가 있다”며 한 목소리다. 특히 유괴·납치 등에 의한 살인사건의 경우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결국 가정이 파괴되는 등 폐해가 고스란히 피해자 가족들에게 돌아오는데 국가가 이를 외면한 채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용진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대표는 “죄의 무게를 따지지 않고 다른 형법과의 형평성을 들어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 대표 자신도 지난 2000년 딸 준원양이 실종된 이후로 생사를 알 수 없다며 애끊는 마음을 전했다. 공소시효 배제에 큰 관심을 표명해 왔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도 “죄질이 나쁜 범죄일수록 시효기간을 둬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공소시효 연장 및 배제와 관련해 무엇보다 ‘법적 안전성’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질서 유지 차원에서 공소시효는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입장도 조심스럽다. 법무부 형사법제과의 한 관계자는 “일부에선 아예 공소시효를 ‘폐지’하자고 하는데 이는 법적 논리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며 “원칙상 ‘배제’라는 말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들어 공소시효 연장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성단체 등에서 주장하듯 성폭력 범죄처럼 특정사안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공소시효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증거멸실 및 훼손의 우려, 둘째 범죄자의 사회복귀 기회 제공, 셋째 동기 부여를 통해 적절한 시기 내에 수사 종결을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특히 비교적 경미한 범죄나 의도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 불안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일례로 목격자가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 과거에는 무죄로 판결됐다면 지금은 DNA 검사 등을 통해 충분히 용의자를 식별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때문에 공소시효를 유지하자는 입장에서는 공소시효 기간과 상관없이 충분히 사건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인 반면, 공소시효를 연장·배제하자는 입장에서는 단서가 있어도 공소시효가 지나버리면 수사를 못하기 때문에 범죄 예방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표창원 경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가기관은 마땅히 수사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향상시킬 의무가 있다”며 “기한을 넘기게 될 경우 단서가 있어도 수사를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공소시효를 배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현재 법사위에는 공소시효와 관련해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소시효 연장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이원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2년째 계류 중에 있다. 이중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접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 배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단 한차례의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에 그치는 등 입법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란?

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사의 공소권이 없어져 그 범죄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형사상 범죄행위나 민사상 불법행위에 대해 각 사안에 따라 기간이 정해지며, 만료 시점까지 공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처벌이나 배상 등의 책임이 면제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의 경우 법정형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두고 있으며,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 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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