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정치력에 대해 합리적 판단...영부인 좌석 없는 대통령 취임식에
“민주주의 하겠다 출범한 정부가 얼마나 가부장적일지 보지않아도 뻔해” 일침

해위(윤보선 대통령의 호)의 종로구 출마 때 제일 어렵게 생각한 상대는 박순천이었다. 공덕귀 여사는 아내지만 ’‘좋은 정책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언변이 해위에겐 없었다“고 평가한다. 3.15 부정선거 항거와 4.19 혁명으로 인한 이승만 박사의 하야에 대해선 ”생명을 건 젊은이들의 정의로운 함성에 하늘은 무심치 않으셨다“고 술회한다.

공 여사는 정권을 인수할 탄탄한 야당이 없음을 걱정하는 한편, 허정 과도정부 기간에 민주당 신구파 간의 싸움을 보고 “꿈같은 해방을 주신 하나님 앞에 교회가 파벌싸움을 하고 갈라졌다고 해서 부끄러워했는데, 정권을 인수해야 할 야당 안에서도 또 싸움인가! ”라며 한탄했다.

60년  8월 1일 다수 의원의 지지로 내각책임제하의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남편이 선출되었을 때, 공 여사는 “해위가 ‘총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야당 지도자로 쌓은 오랜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면서 장면씨가 총리 자리를 기어이 따낸 것을 두고 신파를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10월 1일 제2공화국 출범 경축식장에 영부인 자리가 장만돼 있지 않자 이에 화가 난 해위가 이를 기어코 바로 잡아놓았다. 공 여사는 크게 개의치는 않았으나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제2공화국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인데, 이렇게 출범한 정부가 얼마나 가부장적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옳은 판단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민주당의 신구파 싸움에 통분하고, 특히 장면이 대통령의 국군통수권 승인 절차를 유보하는 가운데 5.16 군사쿠데타를 맞게 된 데 대한 불만은 대단히 컸다고 한다.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다가 전임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 ‘인의 장막’을 폈다는 등 정치개입 의혹이 일던 시기이기에 해위는 아내의 정치적 역할을 완전 배제하고 이를 대체할 문화적 역할만을 맡겼다고 한다. 충분한 식견을 가진 엘리트 여성으로서 공 여사는 이같은 상황을 이해는 했지만 “경무대 안에 앉아있는 나는 조롱에 든 새와 같이 소식을 잘 듣지 못했다”는 토로로써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은연중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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