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융합' · '컨버전스' 새 흐름속 21세기 열어나갈 지표로 삼아
세계 각국 앞 다퉈 기획 전시회 열어 재조명 기회로
‘빈치 지방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1452~1519)’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성’을 가지지 못한 채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그는 당시 피렌체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대스승(마스터)’이었던 베로키오의 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화학과 금속학, 수학과 해부학, 시각생리학과 원근법 등 화가가 되기 위한 아주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습득했다. 20세가 되던 해 그는 예술가들과 의사들로 구성된 길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베로키오를 위해 일했고, 도제를 마친 30세가 되어서는 밀라노의 스포르차 공작을 찾아가 자신을 최고의 군사기술자라고 소개했다.
▲ 다 빈치가 그린 ‘자궁 속의 태아’. |
그는 또한 실험을 하거나 그것을 이론화하는 대신 현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과학활동도 수행했다. 특히 30여구에 달하는 다양한 연령별 사체를 직접 해부하고, 이를 소와 새 등의 동물들의 구조와 비교하면서 남겨놓은 200개의 묘사도는 오늘날에도 그 정교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감탄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인체의 비례도’와 인간의 근육도, 인간 뇌의 단면도와 자궁 안의 태아에 대한 묘사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한 사람이 이렇듯 다양한 일에 대해 동시에 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재능이 특출하였던 점도 있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아직 예술가와 과학자, 건축가와 기술자의 영역을 서로 분명하게 분리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과학은 고대 그리스 학문의 정점에 다시 도달해보자는 르네상스 운동의 결과로부터 탄생한 것으로, 과학과 예술은 서서히 그 겹침의 영역을 줄여가면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발전해오게 되었다. 과학이 합리성과 객관성을 상징하게 된 반면, 예술은 주관과 감성을 존중하면서 C P 스노(Snow)가 말하듯 대화가 불가능한 두 문화(two culture)를 이루어왔다.
21세기 우리는 다시 융합과 컨버전스(convergence·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합쳐지는 일)라는 새로운 흐름 속에 놓여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주제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기획전이 열리는 것은 ‘과학’과 ‘문화’라는 양립되어 있는, 그렇지만 창조성이라는 근본에서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상호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두 가지 코드를 일찍이 그가 읽어내고 또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 빈치가 구상한 ‘날개치기 비행기계’의 그림과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비행기계의 모습. © (주)엠오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