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여유만만 시골사람들의 시간 개념

“아니, 왜 안 나오능겨….”

오전 11시쯤 이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회관에서 회의한다고 혔자녀….”

“회의한다고만 했지, 시간은 말하지 않았잖아… 전화로 알려줄 줄 알았지.”

“아, 아침 먹고 나오라닝께…. 다 모였으니께 얼릉 와….”

난 아직 아침 안 먹었는데…. 늘 이런 식이다. 아침 먹고, 아니면 저녁 때…, 도대체 몇 시 몇 분이냐고? 그래도 그걸 불평하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이 나 빼고는 없다. 아무 문제 없이 잘 맞추고 산다. 처음에는 이런 시간개념에 짜증도 났지만 시골이 여유롭다는 것은 바로 이 느리게 가는 시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이제는 나를 맞추고 산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준비할 것 다 하고 양반 걸음으로 천천히 회관으로 향하는 것이다.

현재 나는 농사일 배우려고 예산에 있는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원에서 특수과정인 원예반에 등록, 강의를 듣고 있다. 금년 2월, 과정이 마감되는데 지난해 11월까지 졸업 리포트를 내어달라고 교수님께서 신신당부하였다. 물론 나는 밤을 새워가며 마감일을 칼같이 맞추었다. 허나 11월까지 리포트를 낸 사람은 나를 포함해 댓 사람. 교수님은 12월까지는 필히 내주어야 졸업논문집을 낼 수 있다며 통사정하신다. 그런데 1월 중순이 넘은 지금, 아직도 교수님은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는 학생 집을 일일이 방문하시며 도와주고 있다 한다.

“아니 바쁘실 텐데 힘들어서 어떻게 하세요?”

“힘들어도 할 수 없지 어찌켜. 그리고 어차피 학생들 가정방문 계획은 있었으니까….”

예산 토박이 우리 교수님도, 학생들도 조바심이란 찾을 수 없다.

시골 사람들의 이런 시간개념은 삶을 자연에 맡기고 살다 보니 인간이 아무리 서둘러 봤자 땅이 마음을 열고 하늘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인식이 몸에 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동동거려 봤자 자연이 마음 먹은 때 비가 오고, 때가 되어야 싹이 올라오니 말이다. 촉진제 없이 절로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서울 생활할 때 시간에 대해서는 완전 결벽증이었던 나.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곳 생활에서 아직까지 불편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딱 맞추어야 할 건 오로지 기차시간뿐….

서울 갔다 내려오는 길. 앗, 오늘까지 보내주어야 할 돈이 있었는데 지금 시간이 오후 5시… 은행은 4시 반이면 마감해버리니 신용에 금이 가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도 혹시 하며 우리 동네 금융기관인 농협 지소에 전화를 건다.

“저 박효신인데요… 아시겠어요?”

“그럼요, 안녕하세요?”

주민 수가 몇 안되어 그런지 고객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주는 은행 직원이다.

“오늘 꼭 보내야 하는 돈이 있는데… 거기 도착하면 5시 반은 될 거 같은데, 큰일났네… 오늘 부치는 거 안되죠?”

“5시 반이면 도착할 수 있으세요?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세요.”

아… 숫자에 칼 같은 은행조차 이 여유로움…. 게다가 천천히 오란다. 서울에 있을 때 어느 은행 앞에서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아침에 일이 있어 마음 급했던 나…. 아침 9시29분,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서있던 은행 직원, 바쁘니까 좀 열어달라고 해도 시계를 보고 있다 딱 9시30분이 되니 문을 열어주던…. 직원이라 해봤자 단 4명뿐인 우리 동네 은행은 ‘아침에 좀 일찍 나가야 하는데…’ 하면 8시 반부터 문 열고 기다려주는 곳이다. 아마도 시간 안 지키는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은행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시간개념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좀더 두고 생각해볼 작정이다. 왜냐 하면 살아보니 그게 편한 때도 있고 불편한 때도 있으니까. 하여튼 서울 습관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나는 급할 거 없는 이 생활에 어느 때는 조바심을, 어느 때는 그냥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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