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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이나 ‘빈민운동’이란 말이 있기 30여 년전부터 저소

득층들과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해온 김혜경 관악구의원(53). 그는

주민들이 내세운 대표로 91년 무소속으로 지방의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이번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내리 ‘무소속’ 3선 의원을 기록

한, 지방의회의 유일한 여성의원이기도 하다. 또 홍미영 인천시의원

과 더불어 대표적 빈민운동가 출신의 여성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 의원의 활동중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의회활동

초기부터 참다운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주민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한

끊임없는 시도. 95년 지방의회 때부터 주민과 도시빈민운동가들을

모아 ‘관악주민연대’를 결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고, 그해 말

에는 사회복지운동을 주도적으로 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해 사단법인

‘관악사회복지’를 96년 6월에 띄워 현재까지 이사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96년부터 주민운동을 구체적으로 정치세력화하자는

의도에서 매월 1회씩 사회복지포럼을 운영해오고 있다. 여기서 논의

된 사항들은 김 의원을 통해 관악구의회에 상정된다. 올해부터는

‘지방자치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또 하나 첨가했다. 구 예산,

심의, 투자 과정에 주민이 엄중한 감시자로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이런 시도는 지방자치시대 들어서 첫 시도일겁니다.

제가 무소속 주민대표로 91년 의회진출에 성공한 데 힘입어 올해 선

거엔 저 외에도 2명의 무소속 주민후보들을 세웠습니다. 이중 유정

희씨는 당선됐지만,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나온 20대 후반의 남

성후보는 그만 떨어지고 말았지요. 너무 젊고 아직 결혼을 안했다는

것이 나름대로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지만, 다음 4년 후엔 꼭 당선

될 것으로 믿습니다.

주민대표 3명중 2명이 당선되는 성과를 얻은데 힘입어 다음 선거

에선 27개동중 반수 이상의 동에서 주민후보를 내서 당선시키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는 곧 주민자치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김 의원은 그래서

기초의회 만큼이라도 비교적 당리당략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정당

배제를 강하게 주장한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

동스러웠던 것은 기동이 불편한 노인네들이 ‘우리 대표 때문에 투

표하러 나왔다’고 말할 때였어요”라고 김 의원은 말한다. 주민들

도 정당의 그늘 아래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싫어한다는 것. 그래서 끈질긴 정당 가입권유를 물리칠 수 있었다.

김 의원의 주민대표로서의 자부심은 6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카

톨릭신학대 졸업후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제3세계 도시빈민들의

자활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 맡

겼고, 여기서 활동가로 교육받은 6명중 유일한 여성으로 김 의원이

참가하면서 그의 도시빈민운동은 시작됐다. 종로구 창신3동에서 6개

월만 활동하려던 그의 계획은 서울시의 도심 불량주택 개량사업으로

밀려나게된 주민들의 항의시위에 적극참여해 성과를 거두면서 현재

까지 ‘연장’됐다. 창신동 주민들이 서울시에 부녀교실, 어린이교실

등을 요구해 시가 직업훈련을 시킬 공무원을 지역에 파견했고 이는

결국 부녀과 개설로 이어졌다.

71년 활동지역에서 만난 시공무원 출신인 현재 남편과 결혼한 후

73년 서울의 대표적 빈민지역인 신림7동으로 옮기면서 그의 활동은

개화했다. 74년 서울의대 카톨릭회와 연계한 주말 의료봉사는 76년

의료협동조합의 결성을 낳았고, 당시 1백18세대로 출발한 이 난곡희

망의료협동조합은 전국 최초의 의료협동조합으로 기록되며 10년 후

2천2백 세대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주민이 중심이 된 요셉의

원이 탄생했다. 이런 과정에서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장으로 주도적

역할을 다했던 김 의원이 91년 주민들에 ‘떠밀려’ 지방선거에 출

마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주민들은 모든 선거준비를 도맡아해

주었다.

“저의 활동은 어머니들의 자발적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

다. 지역여성들과 많은 것을 함께 했죠. 식구들 뒷바라지와 가내수공

업으로 점심 먹을 여유조차 없었던 주부들과 ‘국수클럽’을 만들어

한달에 한번 저렴하게 점심식사를 해먹었던 적도 있었죠.

그들과 접촉하며 어머니교실과 청소년공부방(당시엔 이런 용어가 없

었습니다)이 절실함을 알았고 이는 공약으로 이어져 실현돼 지금까

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 의원의 사무실도 겸하고 있는 방 3개로 이루어진 ‘난곡주민회

관’은 현재 건립중인 신림종합복지관의 역할을 다해왔다. 한글, 영

어, 컴퓨터까지 가르치는 어머니교실은 70세가 넘을 때까지 ‘까막

눈’으로 살아왔던 할머니들에게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주민회관에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김 의원의 집, 교회와 학원 등을

전전하며 이루어지던 청소년공부방 운영도 초등부부터 중등부까지

10개반을 만들어 자원봉사 교사의 지도 아래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실무진으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청소년공부방은 현재까지도 관악구로부터 자료비 명목으로 최소한의

지원만 받고 있고, 그것도 현재의 경제위기상황과 맞물려 언제 끊어

질지 모르는 상태다. 나머지 운영비는 카톨릭재단과 참가자들이 내

는 1만원 안팎의 회비 정도. 그래서 김 의원은 효율적 운영을 위한

위탁조례안을 준비중이다. 또 일용직 노무자들이 대부분 실업증명서

를 뗄 수 없어 공공근로 취로사업을 신청할 수 없는 주민들의 사정

을 전달해 증명서 면제를 얻어내기도 했다.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낳아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돌

아다니면서 빈민운동을 펼쳐왔던 김혜경 의원에겐 자신의 집보다는

활동지역 자체가 더 집 개념에 가깝다. 주민들의 만남의 장으로 집

을 늘 개방해 아이들의 원성도 숱하게 샀다.

“길을 다니다가 할머니들이 ‘애기 데리고 돌아다니던 그 애기엄마

가 이렇게 늙다니...참 고생 지겹게도 많이 했어’라고 다독거려주실

때 눈물이 핑 돕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인간 내음이 물씬 풍기

는 이들과 함께 해 뭔가 나은 미래를 성취해간다는 감격이 제가 이

들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박이 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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