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 관례보다 높은 인세 · 대필고료 받아
짜깁기 · 베끼기 등 출판계 부정적 관행 여전

출판계에 연이은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2006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리 번역되었다는 폭로를 시작으로 출판계의 도덕 불감증을 보여주는 일이 줄지어 터지고 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널리 알려진 미술인 한젬마씨의 경우 지금껏 발표한 책들이 전부 대필이었다고,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는 제자들의 시를 자신의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그대로 표절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인생수업’은 캐나다의 사진작가 그레고리 존 리처드 콜버트의 작품사진을 표지와 본문에 거의 그대로 베껴 그렸다는 혐의로 출판사 대표가 불구속 기소되었다.

창작물의 저작권을 다른 어느 산업보다 보호해야 마땅한 출판계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고질적 관행과 도덕 불감증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마땅하다. 창작자인 마광수 교수 개인의 표절 사건은 그렇다 하더라도 대필과 저작권 침해가 벌어진 사정은 무엇인가?

정지영씨나 한젬마씨의 경우 이런 저런 폭로성 기사를 보면 두 사람 모두 대필이나 대리번역을 당연하게 생각한 듯하다. 대필이나 대리번역은 사실 그동안 학계의 고질적 병폐였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는 출판계 내에서 대리번역이나 대필을 해서라도 베스트셀러를 터트려야 한다는 상업주의와 강박감이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건에 연루된 출판물이 모두 베스트셀러였음은 의미심장하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경우 정지영씨가 번역 인세를 7%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번역서는 외국 출판사에 통상 6~7%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정상적인 출판행위를 한다면 통상 10% 선에서 해결해야 하므로 번역 인세를 3~4%선에서 지급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무리하게 2배나 되는 번역 인세를 지급했음은 정지영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과대 포장해서라도 대량판매를 작정했음을 보여준다.

한젬마씨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대필 작가가 1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한젬마씨 역시 정지영씨 수준의 인세를 받았을 터이고, 여기에 1000만원 가량의 추가 원고료를 출판사가 책임졌다는 뜻이다. 통상적으로 3000~5000부를 팔기도 어려운 출판 현실에 비추어 보자면 과한 행동이다. 다시 말해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기본과 정석을 무시했다는 뜻이다.

출판은 도박이 아니라 문화이며 비즈니스다. 한권의 베스트셀러가 출판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정직하게 한권 한권의 책을 만들고 있으며 필자나 번역자들은 적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묵묵히 작업을 하는 게 현실이다.

사진 저작권 침해행위 역시 출판사의 행위를 변명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인생수업’을 펴낸 출판사가 고질적으로 파행을 일삼은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펴낸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책에 쓰일 사진 저작권은 디난 하이트로부터 삼고초려 끝에 얻었고,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 쓰인 저자의 사진 역시 해리 보든에게 저작권료를 공식적으로 지불했다. ‘인생수업’의 경우 사진작가인 콜버트와 연락을 취했으나 천문학적인 저작권료와 작가의 예술원칙이라는 벽에 가로막힌 것으로 보인다.    

1996년 이후 시행된 베른협약에 따른 저작권 분야의 국제협약은 저작권뿐만 아니라 출판권을 크게 보장했고 결과적으로 중복출판에서 벗어난 출판물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그러나 근대적 출판행위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우리 출판은 짜깁기와 베끼기 등 중복출판을 관행처럼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아직까지 출판계 내부에서조차 저작권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학습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영상시대로 접어들며 책과 멀어지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이미지가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책이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저간의 사정이 불미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련의 사건이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기 위한 진통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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