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남녀 한데 어울려야 경쟁심도 생기죠”

여성신문은 한국과학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정책과 네트워킹, 성과, 역할모델 등을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국내 여성과학기술인들을 위한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 마지막 순서로 프랑스 선후배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마인드, 연대와 역할을 인터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물리학자] 마리-폴 필레니 고등교육연구부 ‘양성평등직업위원회’ 부위원장

“여성특화정책 자칫 화 자초”

프랑스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캠페인이 아니다. 여성이 보조인으로서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양성평등’이란 남성도 섞여 있는 조직에서 함께 뒤엉키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며 같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교육연구부 ‘양성평등직업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실질적으로 위원회를 총괄하는 마리-폴 필레니 파리6대학 물리학과 교수의 ‘양성평등’에 대한 정의는 역으로 여성 우대 혹은 여성 할당에 대한 암암리의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것은 또한 대다수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보편적 정서이기도 하다. 필레니 부위원장은 “여성만을 특화시킨 정책은 남녀를 편가르기 함으로써 여성 개인에게 부메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양성평등직업위원회’는 고등교육연구부 프랑수아 굴라르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10명의 자문위원을 갖춰 장관 자문기구로 지난해 1월26일 출범했다. 필레니 부위원장은 “지난 10월 중순쯤 구체적인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방안이 얘기되기 시작해 앞으로 전망이 밝다”며 “위원장인 굴라르 장관이 남성이기에 같은 여성 과기인 정책을 말할 때 비판을 받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데 비해 여성이 이를 말할 땐 상대적으로 그럴 여지가 적어 심적으로 부담감이 적다. 따라서 향후 위원회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위원들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위원회의 주요 현안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 벽, 일과 육아의 이중고, 그리고 기업에서의 여성 역할에 대한 정의라고 설명했다.

“결국 위원회 내의 모든 쟁점과 논의는 남녀간 같은 조건에서 한층 수준 높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수학자] 아들린 르클레르크  IUT 강사

“아이 문제가 일 가로막아서야…”

20대 후반의 수학자인 아들린은 파리에 10여개 있는 기술대학 중 하나인 IUT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오는 4월쯤 교수 시험에 도전할 계획. IUT 같은 기술대학의 경우, 4년제 이공계 대학의 여성이 30%에 불과한 것과는 달리 남녀 학생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여기엔 상대적으로 단기 코스인 2년 과정이란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

“과학연구국립센터(CNRS) 같은 공적 분야엔 여성이 남성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진출해 있다. 반면 민간 분야에선 아직도 이공계 여성은 희귀한 존재다. 전기통신과 컴퓨터 관계 일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새언니의 경우, 그 회사 간부들이 공식 석상에 갈 땐 으레 새언니를 대동해 ‘우리 회사에서도 이렇게 여성을 고용한다’고 홍보하곤 할 정도다. 반면 공기관, 민간기업 둘 다 여성 고위직 진출은 아직도 요원하다.” 

수학 중에서도 통계를 전공, 건강 관련 통계를 가지고 제약회사와 연계해 프로젝트도 벌이는 아들린은 프로젝트 수주나 수익에 있어서도 남녀 차이가 난다고 토로한다.

“문제는 여성이라고 차별해서가 아니다. 남성은 그 일에만 매달리면 되기에 기안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쓸 수도 있고, 다양하게 수많은 서류를 신속히 접수시키는 등 여성보다 전체적으로 일을 훨씬 빨리 추진할 수 있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서 남성처럼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린의 토로는 현재 2030 여성 과기인들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다. 그렇기에 여성 과기인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비판이다.

“선배들의 노력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노골적인 어려움과 불평등은 이젠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10년 전부터 여성 과기인들의 사회진출 욕구나 동기는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아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고민에 고민을 더하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아이를 갖고 싶다 해도 연구가 그 때문에 뒤처진다면 그런 선택을 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모니크 무토 여성공학인협회 회장

“여성공학도 사회진출 아직도 먼길”

1982년 설립돼 ‘여성과 과학’ ‘여성과 수학협회’와 함께 연대하며 프랑스 여성과학기술계를 대변하는 ‘여성수학인협회’(fi).

협회를 이끌고 있는 모니크 무토 회장은 인터뷰 첫머리에서부터 “지난 2000년 이후 공학 전공 여학생은 25%에 이르는데 실제 사회 진출률은 16%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9%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자 정책적으로 중점 지원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런 위기의식에서 설립된 협회는 초기부터 ‘여학생들이여, 엔지니어를 겁내지 마라’는 캠페인을 적극 전개해왔다. 구체적으론, 일단 공학을 전공하면 그중 80% 이상이 계속 일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개인적으로도 보수 조건 등 커리어 만족도가 높은 직종이란 점을 어필시켰다.

무토 회장 자신도 35년간 은행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커리어 경력을 쌓아 간부급까지 올라갔다. 단, 문제라면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녀 임금의 차이가 세월과 비례해 벌어진다는 것.

“요즘은 그 격차가 3~4%로 좁혀졌다지만 나만 해도 입사 초기에 동급의 남성에 비해 15~20% 차이가 나는 봉급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은 이후 휴지기 6개월이 이어지면서 남녀 격차의 한 전환점이 돼버린다. 이 기조가 이어지면 정년퇴직 즈음엔 많으면 20~30%까지 격차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여성들의 노력과 인력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성인력 지원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가 희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여성인력에 많은 공을 들이려 하는데,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여성 고용을 늘려야 회사 이미지와 평가가 높아진다는 사회적 경향 때문이며, 둘째는 베이비붐 세대 주요 인력층의 정년퇴직이 늘어남에 따라 그 빈 자리를 여성인력으로 대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원도 직종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이다. 고위직 여성일수록 회사에서 보너스 개념으로 지원하는 육아비 덕택에 보모 사용을 자유롭게 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갈 수 있는 반면, 하위직 여성들은 육아비용을 대면 남는 게 없어 오히려 가정으로 역귀환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무토 회장은 임기 2년을 앞당겨 조기 퇴직했다. 조건은 남은 2년간의 임금을 65%만 받는 것으로, 기업 측에선 인력 적체현상을 다소 해소하고 새로운 인력군을 투입해 ‘젊은 조직’을 만든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이같은 조기퇴직제는 아직은 일부 대기업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중이다.

무토 회장의 경우 협회 활동을 좀더 충실히 해내고, 무엇보다 여성공학인 국제연대에 주력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기퇴직제를 선택했다. 이 덕분에 퇴직하던 해 8월 말 이화여대에서 (사)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주최로 열린 제13차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현재 여성 공학인들의 전공은 60% 이상이 농업, 생물학, 화학, 수학 등을 택하는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 공학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축·토목 분야엔 여성들이 거의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좀더 균형적인 진출이 필요하다. 협회 역시 이를 위해 열심히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그동안 기획 연재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리안 노엘 주한 프랑스대사관 과학기술 담당관, 박혜숙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소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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