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업인을 만나다 (14) 토종꿀 특성화에 성공한 박영애 부연영농조합 작목반장

강원도 진고개 중턱에서도 더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부연마을. 해발 800m 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분지가 바로 박영애(52)씨 가족이 일군 토종꿀 생산단지 부연동이다. 짙은 녹음에 포근히 안겨 때 묻지 않은 청정함을 자랑하는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지켜 온 청정지역이다. 마을 진입로가 포장이 되고 관광객이 몰려오면 토종벌의 생존 여건인 마을 환경이 파괴된다며 주민들은 진입로 포장을 거부했다.

전직 간호사였던 박씨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가업을 이어받아 양봉을 해온 김영철(작고)씨는 벌들의 이동을 쫓아 대구에서 강원도를 거슬러 벌이 살기 적합한 부연마을을 찾아냈다고 한다.

남편은 벌들이 꿀을 채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라일락, 장미, 이름 없는 들풀을 마을을 뒤덮도록 심었다. 마을은 점점 꽃향기와 풀냄새가 언덕을 넘을 듯 향기로운 마을이 되었다.

부연동을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무에서 유를 일궈낸 박씨 가족의 개척정신으로 마을은 점점 토종꿀 생산단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박씨 가족이 집집마다 벌집을 분봉해주면서 부연마을의 18가구 중 14가구가 양봉업을 겸하게 되었다. 마을 전체의 꿀 수익이 연간 2억~6억 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벌꿀 한 병을 10만 원에 팔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사실 부연마을은 마을 주민 모두가 합심해 일군 땅이다. 5년 전 장마가 계속되고 동해안의 잇단 산불로 밀원이 부족해져 말벌과 땅벌 등 야생벌이 토종벌통을 습격해 벌들을 죽이고 꿀을 빼앗아가는 일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야생벌의 다리에 농약을 묻혀 야생벌의 몰살을 도모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토종벌을 지켜왔다. 또 벌들이 채집할 꿀을 위해 근처 농토에서 재배하는 작목에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규모 양봉업자들이나 중국산 꿀이 설탕물을 벌집 주변에 놓아두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한편 좋은 꿀의 기본인 밀원(蜜源)이 될 나무와 꽃들을 심기 위해 박씨 가족은 양봉 수입을 고스란히 밀원에 투자했다.

남겨진 삶 새로운 내일

하지만 이 모든 시작을 일궜던 남편이 덜컥 간암을 얻고 말았다. 의료 사각지대인 오지에서 남편의 투병은 박씨 가족에게 커다란 싸움이었다. 결국 남편은 훌쩍 세상을 떠났고 박씨에겐 아이들과 땅 그리고 벌이 남겨졌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박씨는 홀로 땅을 지키며 벌을 돌보고 영농조합을 꾸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폴리스가 첨가된 꿀을 개발해 특성화에 성공했다. 프로폴리스는 벌집의 틈이 난 곳에 발라 병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천연 페니실린이다. 유기물과 미네랄 등 세포 대사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물질이 들어있고 항염, 항생, 면역증강물질로 로열젤리에 이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물질이다. 프로폴리스가 함유된 꿀은 같은 양의 토종꿀보다 두세 배 비싸게 팔린다. 암 세포의 복제를 억제시킨다는 소문이 늘면서 기능성 보조식품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농협하나로마트, 현대백화점 등에 진열되면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데 지금은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꾸준히 다시 찾는 고객이 연간 1000여 명 수준이다.

“2차 제품 개발 농산물 설 자리 확보”

과연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게 가능한가. 26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한 결과, 이제는 성공사례로 손꼽히며 매년 2억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박씨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1차 농산물로는 더 이상 종자 값도 못 건지고 인건비 충당도 안 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값 싼 중국산 농산물에 이겨낼 재간이 없어요. 하지만 특성화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관에 5000원에 팔았던 도라지의 경우 이제는 10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도라지 추출물을 꿀에 첨가했기 때문이지요.”

박씨는 토종꿀과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일을 정부와 학계가 나서서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새농민상을 수상한 직후 98년에 농협중앙회가 지원한 해외연수로 이스라엘에 가 봤더니 학자들이 종자 개발을 돕고 전문 경영인이 종자 수출을 주도하는 등 정부가 농민과 전문가의 산학 협동을 주선하고 있었습니다. 농가 입장에서 기술을 개발하니 농민에게 실질적이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상품을 만들어내니 잘 팔리고, 농민-소비자-정부-학계 네 박자가 딱딱 맞고 있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건국과 동시에 키부츠(공동농장)를 각지에 건설하고 국가 주도의 농업경영을 시작했다. 고학력 농업 종사자들이 직접 개발한 농경기술은 국토 대부분이 사막지대라 연간 수백㎜의 적은 강수량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관개체계를 만드는 등 국제적인 수준이다.

박씨는 “빗방울만 이용해 세계적인 종자 수출국이 된 이스라엘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강수량이나 토질 등 세계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도 싸구려 수입 농산물에 국민의 먹거리를 의지해서 되겠느냐”며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농산품 우수성 알릴 길 열어줘야”

박씨는 또 농산물에 기능성 표시를 허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토종꿀이 목감기 환자나 호흡기 환자에게 좋은 효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꿀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상 농산물 과대광고 규제 때문에 꿀의 기능성 효능을 알릴 수가 없어요.”

미국의 경우 94년부터 인삼, 마늘, 약초 등을 비타민과 같은 영양보조식품에 추가해 미 식품의약국(FDA)의 사전승인 없이도 기능성과 효과를 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식품위생법은 허위표시 과대광고 금지 조문의 포괄성으로 인해 농산물에 대한 효능 광고를 엄격히 금지해왔다.

지난 6월 입법 예고된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농산물의 기능성 광고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지만 한의사협회 등 의학계가 식품이 의학적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해 법안 실행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인삼이나 한약재도 대표적인 기능성 농산물 아닙니까? 하지만 농가에서 말린 인삼에는 효능조차 표시하지 못하고 한약방에 판매할 수도 없습니다.”

특성화 꿀을 개발하고 있지만 광고할 수도, 판매할 길도 적은 현실 때문에 박씨는 자신과 같은 농민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저희가 만들려는 특성화 기능성 제품을 지지해주시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도 계속 만들어 주십시오. 저희가 파는 꿀과 약재가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 농부들은 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프로필

박영애     54년생. 94년 강원도 주최 제2회 녹색지대 품평회 식품부문 금상 수상. 95년 농협중앙회 ‘이달의 새농민상’. 97년 농협중앙회 품질보증마크 획득. 97년 한국식품개발연구원 가공식품 제조기술 연구계약 체결. 97년 과학영농실천 대통령표창. 98년 신지식인 선정

부연영농조합     98년 강릉시 직판장 개장. 98년 농림부 선정 전통식품가공업체. 98년 농협중앙회 식품연구소 농산물 이용 가공식품 연구개발 계약. 2001년 프로폴리스 이용 식품 가공 연구계약

● 후배 여성농업인에게

“자부심이 생명줄”

“자부심이 있나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농부에겐 자부심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박영애씨. 자기가 키우는 작목에 대해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씨의 지론이다.

“경험에서 나온 지식이든 사후적으로 공부한 이론이든 자기 작목의 우수성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우수성을 모르면서 안 사준다고 소비자나 환경만 탓하면 안 되지요. 자랑할 만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면 농사로 성공할 수 없어요.”

● 박영애씨의 성공 4계명

1. 자기 농산물에 자부심을 가지라  

남들보다 시간과 정성을 더 들였다면 반드시 차별성이 있기 마련이며 자기 농사에 자신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부심은 농업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2. 열정과 도전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작목의 특성화를 위해선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열정과 도전정신이 농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게 할 것이다.           

3. 노력·정성 기울이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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