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 ‘칙릿’과 ‘칙북’ 돌풍

책은 시대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문화상품이다. 따라서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 일련의 책들을 살펴서 한 해의 특징적 흐름을 짚어보는 것은 동시대인들의 생각을 가장 면밀하게 파악하는 일일 수 있으며, 이것은 곧 가까운 장래의 문화적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는 일이기도 하다. 2006년을 아울러 우리 사회의 독서 경향에서 예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성’이다.

최근 한 인터넷 서점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자기계발’ 분야에서 책 판매량은 90%가 넘게 증가했는데, 남성 독자는 지난해에 비해 2배가량 증가한 반면, 여성 독자는 무려 4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자기계발 분야에서조차 여성 독자 수가 남성을 앞질렀다.

2007년에는 여성들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욕구를 반영하는 책들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2030 여성 감성 자극하는 ‘칙릿’

전세계 서점가 강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홀릭’ ‘달콤한 나의 도시’

‘칙릿’,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chick’과 문학 ‘literature’를 결합한 새로운 조어다. 주로 20~30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중소설을 뜻한다. 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 불과 몇년 사이에 전세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하게 된다. 이후 이 장르는 소설로만 머문 것이 아니라 영화나 ‘섹스 앤 시티’ 같은 TV시리즈로 재생산되며 200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한다.

올해 한국에서 출간된 로렌 와이스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문학동네)와 소피 킨셀라의 ‘쇼퍼홀릭’(황금부엉이)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악마는…’의 경우 영화의 개봉과 맞물려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칙릿의 국산화에 성공한 작품으로는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를 들 수 있다. 서른한 살, 직장생활 7년차의 여성 주인공을 통해 한국의 도시 미혼 여성들의 일과 연애, 인간관계, 그리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음으로써  여성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칙릿’ 다양한 여성

 자기계발서 자리매김

‘여성생활백서’ ‘서른 살 여자가 스무 살 여자에게’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

일단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칙릿’은 ‘칙북(chick book)’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넓혔다. ‘칙북’은 ‘칙릿’의 특징적 요소는 그대로 담되 소설이라는 틀을 벗어나 에세이, 자기계발, 생활지침서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안은영의 ‘여자생활백서’(해냄)다. ‘놀았다고 티 내지 말라’ ‘스킨십 도중 딴생각하지 말라’ 등 저자는 극히 직설적이고도 감각적인 주제를 통해 현대 여성들의 인생 전반을 거론하고 충고한다. ‘서른 살 여자가 스무 살 여자에게’(토네이도)의 저자 김현정은 세계적인 경력관리회사에서 일하면서 얻은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여성들에게 삶의 지침을 던져준다. 시대와 계층, 그리고 여성성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충고가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게 제시된 책이다.

남인숙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랜덤하우스)은 2004년에 출간되어 40만 부가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후속편이다. 전편에서는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가 돼라’는 주제로 21세기 여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했다면, 속편에선 ‘후천적 귀족으로 진화하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구호를 통해 여성들에게 외면과 내면의 조화를 이루는 총체적 자기관리법을 제시한다.

자녀교육서의 관점 변화,

아이의 변화에서 엄마의 변화로

‘아이의 천재성을 키우는 엄마의 힘’

‘내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하는 엄마의 힘’

자녀교육서에서 보인 주부들의 관점 변화는 2006년도 독서 트렌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예전에는 엄마가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주목했다면, 올해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아이의 천재성을 키우는 엄마의 힘’(진경혜, 랜덤하우스코리아)은 10살도 채 되기 전에 자녀를 미국 대학에 입학하도록 교육한 진경혜씨의 자녀교육서다. 이전에 펴낸 ‘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키웠다’가 아들에 대한 교육 방법론을 단순하게 제시하는 것에 그친 반면, 새로 펴낸 이 책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의 오랜 교직 경험이 바탕이 된 ‘내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하는 엄마의 힘’(오야노 지카라, 큰솔)은 아이의 능력은 엄마의 교육력, 즉 ‘엄마의 힘’에 의해 결정되니 자녀를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자녀를 둔 기혼 여성들의 큰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공지영신드롬, 주요문학상 장악 등

여성 중견작가 활약 돋보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틈새’

올해는 특히 여성 중견 작가들의 활동이 돋보였다. ‘공지영 신드롬’이라 불리기도 했던 공지영 바람은 갈수록 좁아져가는 순수문학의 입지를 넓힌 사건. 지난해 출간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이 동명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8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며 75만 부 이상 팔리는가 하면 장편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과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올해 주요 문학상들은 여성 작가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이상문학상의 정미경, 이수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의 이혜경, 대산문학상의 김인숙, 이산문학상의 은희경, 한국일보 문학상의 강영숙씨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늘진 삶의 구석구석을 표현해왔던 이혜경씨의 신작 단편집 ‘틈새’(창비)는 제목처럼 일상의 경계에서 만나게 되는 불임이나 재혼, 이주노동자 등 현대 한국 사회의 폭력성과 소외, 소통의 문제를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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