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속에 정계개편 불개입· 공정 대선관리 선언해야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간에 이뤄진 ‘후보 단일화 게임’은 마치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와도 같았다. 대선 후보 등록 직전 노·정 두 후보가 담판을 통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후보 단일화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한 다음 이를 과시하기 위해 포장마차에서 러브 샷을 한 장면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2002년 대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지지후보 결정에 영향을 준 사건이나 공약으로 가장 많은 사람(19.9%)들이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꼽았다. 이는 ‘행정수도 충청 이전’(18.7%)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에 못지않게 국민의 뇌리 속에 아직도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노무현의 눈물’일 것이다.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 중에 노무현 후보가 TV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던 한 줄기의 눈물은 선거 판도를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혹자는 이러한 노무현의 눈물이 최소한 100만 표는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노무현의 눈물이 이처럼 유권자의 심금을 울린 이유는 무엇일까?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을 흘린 남자의 파격이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기 때문인가. 그보다는 당시 노무현의 눈물에는 진솔함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눈물에는 역설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의 아픔을 같이 하면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많은 국민은 노무현의 눈물에 속았다고 비분강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임기를 1년 2개월 남겨둔 현시점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급기야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임기 말에 예기치 못했던 외환위기를 맞아 8%의 지지도로 막을 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하튼 4년 전 산소와도 같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노무현의 눈물은 애석하게도 결과적으로 악어의 눈물이 되고 말았다. 불행한 것은 이러한 처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오로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한탕주의식 정계개편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해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만으로는 열린우리당의 진로를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정계개편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현재 노 대통령은 본인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전 방위적으로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통치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임 덕’(lame duck)을 극복하려고 대통령이 정계개편에 나서면 나설수록 오히려 ‘데드 덕’(dead duck)이 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지금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임기 중단과 탈당 카드로 정치권과 국민을 협박하는 무모함이 아니라 국정 실패와 국민 분열에 대한 참회다. 지난 4년간 국민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데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0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노무현이 흘려야 할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 참회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반성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노 대통령은 절대로 정계개편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역사상 가장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대선을 관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이 길만이 남은 임기 동안 야당의 협조를 얻어 원만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만약 노 대통령이 국민이 부여한 이러한 신성한 마지막 기회를 저버린 채 또다시 국민을 일시적으로 현혹시켜 대선 승리의 주역이 되려는 위험한 유혹 속으로 빠져든다면 이는 결코 씻을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설 것’임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