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여성시대’ 운운 하지만 그속엔 아직도 저항·반발 잠재

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호주제 폐지운동, 성매매 방지법 제정, 여성 정치진출 확대를 위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발족 등 여성계의 핫이슈들을 한목소리로 묶어내 여론화하는 역할을 해온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다.

2006년 여성계의 가장 큰 소식은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여성 총리의 탄생은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심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여성에 대한 적극적 조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일부 남성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06년을 결산해야 하는 이 시점에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두 가지 사실을 접하면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첫째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둘러싼 정치권의 비정상적인 대응이다.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의 탄생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사법 분야에서 여성이 수장을 맡는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고려한 공정성과 정의를 세우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었기에 여성계는 전폭적인 환영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두 달간 4차례에 걸쳐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는 등 파행을 겪다가 급기야 지명 철회하는 기막힌 상황까지 이르렀다.

비이성적인 정쟁으로 인해 여성 지도자 한 명이 큰 상처를 입고 물러나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단적으로 말해 50대 여성한테 사법부 수장을 맡기지 못하겠다는 정서가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총리도 여성한테 내줬는데 사법부까지 내줄 수 없다는 암묵적인 남성들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절차가 잘못되었으면 절차를 수정하면 되는데, 한나라당은 ‘전효숙은 안 된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펴고 있고, 청와대는 최초 여성 헌법재판소장을 내세우면 큰 무리가 없겠다는 계산을 했다가 절차상 하자로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치자 지명을 철회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여성의 진출을 남성 정치의 들러리로 보는 한 한국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여성권한척도가 여전히 세계 하위권이라는 점이다. 95년 북경세계여성회의 이후 여성운동은 정치·공직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지난 11월 9일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권한척도는 여전히 하위권인 53위로 발표되었다.

여성권한척도를 세계 20위권으로 끌어올리려면 공직선거에서 선출직 중 30% 여성할당을 실질화하고, 비례직 확대 및 50% 여성할당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국무위원 중 여성을 30% 이상 지속적으로 임명하고, 공기업 이사 중 여성 30% 할당, 승진할당제를 통해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20% 확대 등 보다 실질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무늬는 여성시대가 온 것 같은데 아직도 저항과 반발이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임승차하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현대사회 리더십은 투명성과 민주성, 조정과 상생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성 중에서 이 같은 덕목과 전문성, 실력을 갖춘 여성들이 제도적인 장애 없이 진출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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