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여성기업 우선”…공정한 기회조차 발목

우리는 지금 여성기업 115만 시대, 최고경영자(CEO) 3명 중 1명은 여성(통계청 2005)인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기업의 규모는 아직은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기업은 일반기업 대비 부채 비율이 낮고,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데다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높아 건실한 성장 모델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는 여성기업에 의해 창출되고 있으며, 계속 성장 추세에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여성 기업인들은 산업 네트워크 부재로 인한 네트워크 내 구매 및 납품 관련 지식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여성경제계를 이끌어가는 여성경제단체장들과 함께 좌담을 마련하고, 구체적 제안들을 담아냈다.

◆ 일시 : 2006년 10월 26일

◆ 장소 : 프레스센터 19층 석류실

◆ 진행 :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 참가자 : 정명금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한미영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 강형자 한국여성벤처협회 부회장, 김연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여성특별위원장

◆ 취재·정리 : 김미량 기자

‘한국 경제 여성이 희망’ 아직은 뜬구름

“여성파워…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  정명금 회장

올 한 해 동안 소득 3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여성’을 활용하자는 구호가 유독 많았다. 그 가운데 각 분야 여성들의 활약상을 전하며 이른바 ‘여성상위’ 시대나 ‘여풍’이란 말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명금 회장은 “여성파워는 가정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가정에서 주부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사회적 약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기업지원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명금 회장은 “과거 여성 기업인들이 남편의 기업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업형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여성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특히 “(최근 설문조사 결과) 여성 기업인들은 더 이상 여성이기에 차별 받는다고 생각지 않고 있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배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며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공정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여성기업 제품 5% 구매 의무화해야”

“지자체장 의식이 여성기업 지원에 가장 큰 영향” 정명금 회장

“5% 구매 법으로 규정해야 여성기업 큰다” 김연님 위원장

지난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여성기업 제품 구매율은 2.9%에 머물렀다. 정부기관이 이 정도니 민간기업과의 거래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가장 현실적인 도움은 바로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정 회장은 “얼마 전 모 부처의 여성기업 제품 구매율이 2%라고 하기에 조사해 봤더니 여성이 명의사장인 주유소에서 넣은 기름 값까지 포함시켰더라”며 꼬집고 “지자체장의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기업 제품 우선 구매가 아직은 ‘권고사항’인 만큼 지자체장의 ‘노력’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여성기업 우선 수의계약에 해당하는 3000만 원(물품구매) 계약건도 주무 관청에서 귀찮다며 두 가지 사업을 묶어 6000만 원으로 발주하면, 여성기업 ‘우선’이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김연님 위원장은 “장관이 ‘하자’고 해도 말단 기관이나 지방에 가면 ‘모르는 소리’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상위기관에서 ‘공문’ 한 장만 내줘도 도움이 되는데, 5%를 법으로 정한다면 몇 년 사이 능력 있는 여성기업들은 쑥쑥 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영 회장은 “여성기업 제품을 심사·평가하는 각종 위원회에 ‘여성’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괜찮은 제품’도 남성의 시각에선 ‘경쟁력 없는 제품’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기회를 잡기조차 어려운 여성 기업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 남편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자가 된 경우와는 달리 최근에는 창업형 여성 기업인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기업의 역사와 창업주의 경력이 짧은 만큼 기존의 네트워크로 진입하기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국가 차원의 정책적인 배려와 함께 사회적 편견을 바꿔가는 노력이 필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 여성기업 게이트웨이 만들어줘야

“대기업과 직접 거래 꿈 같은 얘기…직접통로 열어줘야” 한미영 회장

“여성기업, 경제활동 지원하는 기업 여성파워 보여달라” 강형자 부회장

“거대 규모의 경제적 효과(매출)는 결국 대기업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여성기업은 대기업과 일할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 회장은 “여성기업이 대기업과 거래하는 것은 꿈 같은 얘기”라며 대기업의 높은 벽에 대해 토로했다. 강형자 부회장은 “중소기업이 은행 가서 대출상담을 할 때 ‘삼성 협력사’라거나 ‘○○협력사’라는 타이틀에 따라 대출 금액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우수 여성기업을 돕기 위해 여성벤처협회와 금융사 등이 협력해 만든 ‘여성벤처기업 모태펀드’도 처음엔 300억 원이 목표였으나, 결국 심사에서 깎여 100억 원으로 줄었다. 그 이유는 ‘투자할 만한 여성기업이 없다’는 것. 여성기업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정 회장은 “대기업의 협력업체 순위에서도 여성기업은 맨 마지막 단계다. 특히 건설과 제조분야는 아예 근접할 수도 없다”며 “대기업이 여성기업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게이트웨이를 만들어 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회장은 “이제 여성이 경제 공급자로서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기업과 여성의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여성기업이 여성고용창출에 더 적극적

“육아데이, 육아무급휴직제 여성기업이 앞장서자” 정명금 회장

“대기업 더 이상 고용창출 어려워…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 강형자 부회장 

‘여성기업이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한다.’ 지난해 여성기업에 근무하는 총 근로자 296만 명 중 여성이 69.1%를 차지했다.(‘2005 여성기업 실태조사, 중소기업청,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이는 여성기업이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적정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 부회장은 “대기업이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작은 기업들이 새로운 영역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여성기업들이 성장 못지않게 여성을 많이 고용하는 것이 바로 경제적 기여”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취업이 어려운 주부들이 소규모 창업으로 월 100만 원 정도 번다고 했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여성들이 작은 가게를 열고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 요구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성 기업인들의 사회공헌, 여성 이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정 회장은 “여성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다”며 “여경협이 여성가족부와 ‘가족친화경영’ 협약을 한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어 “육아데이, 육아무급휴가제 등은 여성기업이 먼저 해나가야 한다”며 “향후 경영연수 및 각종 세미나를 통해 이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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