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얼마 전 모 증권회사가 한 은행과 함께 내놓은 중국 관련 부동산 펀드가 단 30분 만에 130억 원어치가 매진돼 판매에 나섰던 증권사측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또한지난달 말 모 저축은행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후순위 채권 청약에선 예정된 금액 150억 원의 2배가 넘는 350억 원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단기화된 거액의 부동(浮動)자금의 힘이다.

부동자금은 움직이지 않는 자금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관심이 집중되는 ‘부동표’가 누구를 찍을까가 정해지지 않은 유권자들의 표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동자금’은 마치 부평초처럼 붕 떠서 움직이는 자금이라고 보면 된다. 즉, 한 투자처에 정착하지 못하고 단타성(短打性)으로 떠도는 자금으로, 통상 현금과 요구불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같은 6개월 미만의 단기 수신자금을 부동자금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부동자금이 금융상품이며 주식·부동산시장 등을 배회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일 “6개월 이내에 이동 가능한 단기 수신자금(부동자금)이 8월 말보다 19조원 늘어난 528조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6~8월 잠깐 줄어드는가 싶던 단기 부동자금이 9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전체 유동성(시중에 풀린 통화량)의 29.7%에 달하는 규모로 불어난 것이다. 2년 전만 해도 400조 원대이던 부동자금이 지난해 말 500조 원을 돌파한 뒤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수년간 지속된 ‘저(低)금리’가 부동자금을 부풀게 만들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주택시장 불안과 금리’라는 보고서를 통해 저금리로 인해 급증한 가계대출이 단기 유동성을 키우고, 이것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버블(거품)을 낳는 악순환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각종 개발계획으로 3년 새 37조5470억 원의 토지보상 자금이 풀려나간 것도 부동자금 대열에 가세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동자금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장기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자금은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확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부동자금 규모의 축소 여부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거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정부가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정치,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530조 원에 육박하는 부동자금이 타오르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작용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한 돈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서민들까지 부동산 사자 대열에 부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 건 어찌 보면,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전에 없이 커지고, 정부정책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얘기는 아닐는지…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