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관점으로 본 인류 역사 ‘성배와 칼’

고대 이집트(기원전 600~400년경)의 여신 이시스 청동상.
▲ 고대 이집트(기원전 600~400년경)의 여신 이시스 청동상.
사람들은 왜 서로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일까. 인류를 전쟁과 파멸로 이끄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 해답을 미국의 여성운동가 리안 아이슬러의 저서 ‘성배와 칼’(비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사회를 ‘성배의 문화’와 ‘칼의 문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 땅에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만들어온 것은 ‘칼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반면 협력과 공존을 중요시하는 ‘성배의 문화’가 번창했던 선사시대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는 것. 여기서 성배란 생명과 탄생을 찬양했던 여신, 즉 여성 고유의 문화를 상징한다. 저자는 성배 문화의 대표적 사례인 크레타 문명(기원전 6000∼2000년)을 재조명하고 “여성과 남성이 대등한 동반자로서 조화를 이룬 마지막 세상”이라고 극찬한다.

‘여신’을 숭배한 평화로운 시대가 깨진 것은 쿠르간족, 훈족 등의 유목민의 침략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들은 칼로써 여신의 문화를 무너뜨렸고 여성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차별했다. 성경 역시 예수 시대의 양성평등을 왜곡하고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기록됐다는 저자의 주장은 소설 ‘다빈치 코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의 세상 또한 칼이 지배하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선 칼의 문화를 버리고 여성적인 성배의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희망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힘이 점차 강해지고 평화와 공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변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문화인류학, 고고학, 종교, 역사와 예술을 넘나드는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가장 중요한 책”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90여 쪽에 이르는 각주와 지도, 연표, 찾아보기 등 방대한 분량은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이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과 아랍이 대립하며, 북한 핵실험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는 지금,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저자의 쓴 소리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리안 아이슬러 지음/ 김경식 옮김/ 비채/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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