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기술인 역할모델은

영국의 여성 과학기술 리더들이 차세대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역할모델은 무엇일까.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과 영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젠더와 리더십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연례회의를 겸해 열린 사진전시회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전문 사진작가 로버트 테일러의 ‘과학·공학·기술 분야(SET)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여성들’ 전시회로, 발견과 혁신·커뮤니케이션·리더십 세 분야로 구성, 6명의 역할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우선 뛰어난 과학기술 역량의 역할모델로 설정된 이는 사우스햄프턴대 컴퓨터 사이언스학과 웬디 홀 교수와 옥스퍼드대 조셀린 벨 버넬 객원교수. 두 사람 다 탁월한 업적으로 일반인 최고의 영예작위로 여왕이 수여하는 기사작위 2단계 전인 CBE(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가 이름 뒤에 따라붙는다.

홀 교수는 350개가 넘는 학술논문을 발표해 왔고, 최근엔 떠오르는 분야인 웹 사이언스 관련 새로운 연구기관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대영컴퓨터학회 50년 역사상 두 번째로 회장에 임명된 여성으로, 이를 계기로 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고 젠더 갭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2005년엔 왕립공학아카데미의 첫 여성 수석 부회장이 됐고, 2006년엔 월드 와이드 웹 국제회의를 영국에 처음으로 유치하는 등 대외적 활동의 폭이 넓다.

버넬 교수는 박사과정 중 천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펄사’(Pulsars)를 처음으로 발견한 인물. 이로 인해 73년 지도교수인 휴이시 박사와 함께 프랭클린재단의 미켈슨 메달을 받았지만 다음해 노벨상 수상에서는 제외돼 영광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았다. 북아일랜드 태생인 버넬 교수는 11세 때 상급학교 진학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여성 교육을 강조하는 퀘이커 교도인 부모의 지원으로 영국의 기숙학교에 유학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훌륭한 교사를 만나 자신이 물리학에 재능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동이 잦은 공무원 남편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고도 20여 년 가까이 임시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상, 미 천문학회의 탁월한 여성 천문학자를 기리는 비애트리스 탄슬리상 등 수많은 상과 함께 다수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왕립학회 종신회원까지 된 버넬 교수는 자신의 말처럼 늘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과학자의 삶을 산 셈.

과학과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선 브리스톨대의 캐시 사이크 교수와 사이언스 이노베이션 Ltd. 전무이사인 매기 애더린 박사가 꼽혔다. 물리학 박사 출신인 사이크 교수는 과학이 사회·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대중과 교감을 크게 넓힐 필요가 있다는 소신으로 대중강연과 사이언스 페스티벌 등의 행사를 활발히 주관해 왔다. 특히 BBC 등 언론매체를 통해 모든 연령층과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과학 지식을 넓히는 데 두각을 나타내 왔다. 이와 함께 수백만 명의 과학적 흥미를 촉발시킨 새로운 개념의 과학체험 센터를 만드는 데 크게기여했다.

애더린 박사는 6세 때 학교도서관에서 천문학에 대한 책을 읽고 우주과학 관련 직업을 갖기로 결정했다. 난독증을 극복하고 임페리얼 칼리지에 진학,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애더린 박사의 회사는 무엇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특히 소수인종의 소녀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고 후에 과학기술 관련 직업을 택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 자신 부모가 영국으로 이민 온 나이지리아 출신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영국과 아프리카 대륙의 학교들을 연계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그는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도전한다면 “세상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결국 그것이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권한다.

리더십 분야의 주인공은 레베카 조지 IBM 이사와 줄리아 굿펠로 런던대 교수. 조지 이사는 대내외적 일과 함께 통상산업부 IT포럼 등 정부 위원회 일을 하며 IT분야에 여성인력을 많이 진출시키는 데 공헌했다. 이 공로로 2005년 OBE(Offic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제4급 훈작사)를 수여받았다.

생명물리학자인 굿펠로 교수 역시 의학아카데미, 생물학연구소, 물리학연구소, 왕립예술대 등의 펠로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며 국제적으로 저명한 대규모 연구 그룹을 이끌어오고 있다. 2001년 CBE를 수여받은 굿펠로 교수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에 대해선 “(과학기술계에서의)생존”이라는 말로 요약해버린다. 이는 여성이 가정생활과 함께 남성 중심의 사회적 편견에 도전해 연구, 교수, 경영과 정책 집행자로서 역할에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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