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는 여성, 남편 이름으로 기부

이혼할 때 전업주부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절반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는 등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보장 노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소득이 있는 사람만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어 전업주부의 사회공익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전업주부 이귀보(48)씨는 지난 한 해 동안 통일·복지 관련 단체 3곳에 총 40만 원의 기부금을 냈다. 좋은 일을 하는 단체도 돕고, 최대 4만 원(기부한 금액의 10%)의 소득공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연말에 기부금 영수증을 내려고 하자 그가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결국 이씨는 남편의 이름으로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이귀보씨는 “아주 사소한 문제이고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내가 기부하고 싶은 단체에 내 이름으로 기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전업주부도 가사노동으로 배우자의 소득을 공유하고 있고, 의료비나 카드 사용료 등은 배우자 소득에서 공제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유독 기부금만 공제가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씨는 “많은 주부들이 시설이나 단체에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공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배우자 명의로 영수증을 발행하는 편법이 계속 반복되고 결국 불필요한 업무 낭비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부자에 대한 통계를 낼 경우 소득이 있는 남성만 기부를 한 것처럼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는 “남편 명의로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영록 조세정책국 소득세제과장은 “의료비나 카드비 등은 남편의 소득으로 가족이 소비하는 생활비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제 대상이 되지만, 기부금은 생활비가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만 공제를 받을 수 있다”며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라도 자기 소유의 재산으로 기부한 것일 수 있고, 현실적으로 누구의 소득으로 기부를 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편 이름으로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부문화가 확대되면서 기부금을 내면 연말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단체가 늘고 있는 추세다. 기부금 소득공제는 건전한 기부문화의 정착과 공익사업의 재정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현재 기부금을 내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공익성 기부금 대상 단체(재정경제부 지정)는 1024개로, 이중 여성관련 단체는 지난 11일 새로 추가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를 포함해 총 50곳이다. 육아·복지·봉사 등 여성과 밀접한 단체들까지 포함하면 100여 개에 달한다.

진현종 변호사(희망제작소)는 “전업주부가 남편과는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자신의 명의로 기부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사회적으로 배려 받아야 하는 것”이라며 “소득세법에 ‘소득이 없는 아내가 기부를 하더라도 남편의 소득에서 지출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규정만 삽입하면 아내의 이름으로 영수증을 처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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