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18년은 한국 여성운동 18년의 산역사”
“여성신문 18년은 한국 여성운동 18년의 산역사”
  • 김미량 기자 kmryang@ 정리
  • 승인 2006.10.20 14:06
  • 수정 2006-10-20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년 12월 2일, 국내 최초 여성정론지로 창간호를 발행한 여성신문이 이제 지령 900호를 맞았다.

여성신문은 여성운동사 자체였다. 단지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여성신문 자체가 여성운동의 발원지였다. 여성 인권 및 지위와 관련된 어젠다를 발굴하는 한편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하고, 제도화하는 노력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변화시켜나갔다. 한낱 가십성 기사로 묻힐 뻔했던 각종 여성문제들이 여성신문을 통해 ‘인권문제’로 이슈화된 것이다.여성신문은 대안언론, 여성언론인 동시에 현장 자체를 바꿔나가는 살아 숨쉬는 실천언론으로서 기성 언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난 18년 동안 여성신문을 통해 사회적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특종’들을 모아 정리했다.

[ 80년대 ]



강간에 대한 사회 이중적 ‘성관념’ 바꿔 -변월수 사건 (88년 0호)



성폭행의 위험에 처한 변월수(당시 33세)씨가 가해 청년의 혀를 깨물어 1심 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 당시 판결문은 ▲변씨가 술을 마신 상태였고 ▲10대 청소년이 호기심에 키스나 한번 해보려고 한 것 ▲살짝 깨물어도 되는데 잘라버렸으니 과잉방어 ▲추운 겨울이라 강간이 어려웠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유죄라고 주장했다. 당시 기성 언론은 이 사건을 가십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여성신문은 강간에 대한 정당방위는 ‘무죄’임을 강변했다. 본지의 지속적인 보도는 여론의 관심을 촉발시켰고, 변씨는 다음해 2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유흥업 종사 여성에 대한 사회적 풍토 경종 -강정순 사건 (89년 9호)



다방 여종업원 강정순(당시 29세)씨가 두 명의 경찰관에게 윤간당한 사건. 퇴근 후 귀가 중이던 강씨는 길에서 마주친 경찰관에게 끌려 파출소에 들어간 후 성폭행 당했지만, 가해 경찰관들은 증거까지 조작해 가며 극구 부인했다. 여성신문의 대대적인 보도와 함께 한국여성단체연합(당시 회장 이우정)을 중심으로 여성계 인사들이 변호를 맡아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이 사건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천시하고 우습게 보는 풍토를 반영한 것으로 일각에서 ‘지킬 가치가 있는 정조’ 운운하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대항한 사건이다.



공보육 필요성 제기…지금은 국가사업으로 -탁아입법과 이동육아인 논의 펼쳐 (89년 38호)



탁아시설이 없어 취업에 방해된다고 다섯 살 난 아들을 살해한 사건 보도를 계기로 여성신문은 끊임없이 보육의 공공성을 주장해왔다. 당시는 엄마가 아닌 탁아시설에 아이를 맡기자는 논의가 사회적으로 ‘불순하게’ 취급받던 시절. 그러나 여성신문은 지속적인 심층기획기사를 통해 ▲탁아소 확대 ▲이동육아인 및 탁아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어린이가 나라의 동량(기둥)’이라는 것은 그 존재가 한 가정 내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존재라는 뜻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조기정년과 부당해고, 여성노동권 침해를 고발하다 -김영희(89년 22호)·김정희(90년 89호) 사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기정년을 당해야 했던 김영희씨(당시 한국통신공사 근무). 당초 공사 측은 전화교환원(55세 정년) 정년 규정을 자의적으로 바꿔 타자수직만 43세로 정했다. 강제 정년퇴직에 몰린 김씨는 7년 여 법정투쟁을 벌였고 결국 승소해 정년을 보장받았다. 이로써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인 조기정년 구습을 타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진주 MBC 프로듀서 김정희씨는 결혼과 임신으로 부당 해고 당한 사례. 김씨는 본지 인터뷰를 통해 “남성들은 예전엔 여성들이 집안에 있기를 바라더니 지금은 미혼 여성과 일하기를 즐긴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이후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승소 판정을 받았다.

[ 90년대 ]



성폭력 관련 입법운동 본격화한 시발점 -김부남 사건 (91년 138호)

“나는 사람 아닌 짐승을 죽였습니다”라는 절규가 아직도 생생한 김부남 사건. 자신을 강간한 남성을 21년 후 찾아가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법원은 여론에 몰려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으나, 김부남사건대책위원회(여성단체 중심)는 ‘무죄’를 주장하는 등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신문은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 및 남성 위주의 성도덕 관념이라는 사회적 모순이 표출된 사례로 규정하고, 성폭력 입법운동으로 본격화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보도해 나갔다.



친족 간 성폭력 수면 위로…성폭력특별법 기폭제 -김보은·김진관 사건 (92년 167호)



“살인을 하고도 마음이 편하다면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자신을 지속적으로 강간한 의부를 살해한 김보은과 그의 남자친구 김진관이 12년 구형을 받은 사건. 여성계는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국민의 기본 권리인 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을 행사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했다. 결국 2심에서 김보은은 집행유예, 김진관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여성신문은 이후 지속적으로 ‘친족 간 성폭력’의 해악을 사회적 이슈화(188호)해 나갔고, 이 사건은 이듬해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결실을 이끌어냈다.



직장 내 성희롱 여론작업 촉발시켜 -우조교 사건 (93년 246호)



당시 ‘3000만 원 시리즈’를 탄생시키며 ‘가십성 화제’로 떠돌던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우씨는 지도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후 이를 거부하자 조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성희롱의 개념도 미약할 뿐 아니라 성희롱은 가벼운 행위 정도로 인식했던 것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 여성신문은 ‘성희롱도 폭력’이며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 사건은 항소가 잇따르면서 99년이 돼서야 우씨의 승소판결이 내려졌다.



호주제 폐지 여론화…실천적 운동 뛰어들어 -언론 최초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 (97년 415호)



지난해 ‘호주제 폐지’가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여성신문은 여성언론으로서 실천적 여성운동을 함께 했다. 97년 3·8 여성대회에서 여성계가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선언한 즉시 여성신문 기자들은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의 의미를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



여성정책 수립에 실질적 압력 행사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 (97년 443호)



여성신문 주최로 97년 대선 막바지에 88개 여성단체와 함께 한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는 당시 KBS로 생중계 되었다.

이 토론회에서 논의된 여성부(현 여성가족부), 장관·비례대표 여성할당, 산전산후 12주휴가, 주부연금수급권,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 여성문제 10대 현안은 이후 빠르게 결실을 보았다.

여성신문과 여성계가 함께 한 여성정책 토론회는 2000년에도 열려 ‘전통’이 되었고, 대선 후보들에게 여성정책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황혼이혼, 여성인권 문제로 규정 -이시형 할머니 사건 (98년 494호)



70세 이시형 할머니가 90세 남편을 상대로 낸 20억 원대 재산 분할·위자료 청구 이혼소송을 법원이 ‘해로하라’며 기각한 사건. 이시형 할머니는 평생 남편의 폭력과 폭언 그리고 인격모독적인 대우를 받아왔다. 할머니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여성신문은 황혼 이혼은 여성의 인권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지속적으로 ‘이시형 할머니 돕기 사업’을 펼쳤다. 2년 여 법정 투쟁 끝에 2000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비혼모의 양육권 인정 촉구 -진현숙 사건 (99년 521호)



 ‘미혼모’란 이유로 생후 1개월도 채 안 된 딸 오름이를 친부의 의사만으로 강제 입양시키게 된 진현숙씨 사건. 여성신문은 당시 자세한 사건 내막은 물론, 여성신문 인권지원 사업으로 지정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매주 지속적인 보도 및 모금활동을 벌였다.

결국 여성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공동변호사단이 결성됐고, 10개월 후 진씨는 아이를 되찾을 수 있었다.

[ 2000년대 ]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 현실 첫 보도 -김명숙 사건 (2000년 559호)

장애여성(정신지체 3급)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 마을 5~7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기까지 출산한 사건으로 여성신문이 처음 대대적으로 보도한 사건이다. 이후 ‘정신지체 여성 성폭행사건 공동대책위’가 구성됐고, 피해 여성 김모씨의 인터뷰를 통해 가해자들의 주장이 명백히 틀렸음을 입증했다. 당시 장애우단체도 꺼리던 장애 여성 인권에 관한 본지의 보도는 장애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건이 속속 들어나는 계기가 됐다.



여성리더 발굴 공익사업 펼쳐 -1만 여성리더를 만나다 (2003년 755호)



2003년부터 2005년(812호)까지 여성신문은 대대적인 여성 리더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각계 여성 리더들을 발굴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여성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이후 ‘1만 여성 리더와 함께 하는 여유만만 콘서트’를 통해 실질적인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공익적 사업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혼녀에 대한 편견에 정면 대응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