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이 맞물린 시점에서 여성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국민주’ 형식으로 탄생한 최초의 여성정론지 여성신문이 창간 18주년, 지령 900호를 맞았다. 현재 각계각층의 여성 리더로 주목받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신문과 인연을 맺어왔다. 여성신문 발행의 주역으로, 주주로, 때론 인기 칼럼니스트로 여성신문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은영 국회의원
▲ 이은영 국회의원
초대 발행인 이계경 국회의원
▲ 초대 발행인 이계경 국회의원
이계경, 이은영 등 정계 활약

박혜란, 미국서 할머니 육아수업

이계경 초대 발행인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진출했다. 성 인지적 예산 편성,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산정 등 여성 관련 법안들을 꾸준히 제안하며 활약하고 있다.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애실 한나라당 의원도 여성신문과 인연을 맺은 정치인. 이은영 의원은 당시 드문 여성 법학자로서 편집위원 회의에 열심히 참여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여성경제학박사 1호인 김애실 의원 역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문제와 경제학을 접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고정희 초대 주간은 여성주의 시인으로도 유명한 인물. 91년 지리산 등반사고로 고인이 됐지만 매년 그의 고향 해남을 찾는 ‘고정희 문학기행’으로 그 정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04년부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고정희 문학상’이 만들어져 ‘차세대 고정희’를 배출하고 있다.

초기부터 편집위원이자 대표 칼럼니스트로 참여해온 박혜란 현 편집위원장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 두 달 전 ‘할머니 경력’을 쌓으러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간 그는 “여성이 자기 일을 하면서 아기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중이며 생명을 돌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근황을 밝혀왔다. 귀국은 아직 미정이지만 한국에서 펴낼 몇 권의 책을 구상 중이라는 그는 얼마 전 서울에서 두 번째 손자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도 알려왔다.

초기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박효신 편집위원은 한국광고주협회 상무와 온양민속박물관장을 거쳐 올해 정년퇴임 후 충남 예산으로 귀농, 본격적인 ‘시골 살이’에 들어갔다. 지난 8월부터 생생한 귀농 생활을 담은 초보 농사꾼의 일기 ‘풀각시의 시골살이’를 연재하며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또한 윤석남, 김점선, 김진숙 등 초기 표지 그림을 책임졌던 여성 화가들은 현재 화단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고물조각가로 변신한 만화가 최정현,

증평 공부방 연 오숙희

여성신문의 간판 만화로 ‘남자의 아이 키우기’ 컨셉트를 개발해낸 ‘반쪽이의 육아일기’를 15년간 연재했던 ‘반쪽이’ 최정현씨는 일단 만화 작업을 접고 화성 봉담에 있는 작업실과 고물상을 오가며 두문불출, 고물 조각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7월 그동안 작업한 고물작품을 가지고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이란 전시회를 열기도. ‘반쪽이의 육아일기’의 주인공으로 생후 2개월부터 여성신문 지면에 등장했던 그의 딸 최하예린은 고1 여학생으로 성장했다. 미술학도로 변신한 그는 두 달 전 캐나다의 미술학교에 들어가 신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오숙희의 돈 다루기’ 등의 칼럼을 선보였던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여성신문은 나의 글쓰기 작업에 바탕이 되었던 곳”이라며 18주년을 맞은 감회를 밝혔다. 요즘은 발달장애가 있는 작은 딸 희령이의 생활을 위해 충북 증평에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 중이라 김포와 증평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고. 큰 딸 희록이가 삽화를 맡은 모녀 공동작업 ‘얘들아 책하고 놀자’를 한겨레신문에 연재 중이기도 하다.

99년 ‘신주부학’을 연재해 주부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전국을 누비면서 기업체, 공무원, 주부,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활동을 펼치는 스타 강사. 현재 ‘KBS 아침마당’을 비롯해 7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여성잡지에 커리어 여성 카운슬링 코너를 운영하며 여성들의 고민을 속 시원히 풀어내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98년 여성신문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연재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75세의 고령인 그는 현재 경기 구리시 아치울마을 자택에서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번 18주년 기념호에 축하 글을 보내오며 여성신문과의 변치 않는 인연을 과시했다. 99년부터 2000년까지 ‘수수밭으로 오세요’를 연재했던 소설가 공선옥씨는 지난해 ‘유랑가족’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2005년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문사회자 최광기
▲ 전문사회자 최광기
여성과학 대중화 시도한 나도선,

시사 진행자로 변신한 최광기

2004년 여성신문이 과학면을 신설할 당시 여성신문과 여성과학계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나도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나도선 이사장은 ‘나도선의 과학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의 과학칼럼을 연재하며 여성신문을 통해 여성과학 대중화를 꾀했다.

전문 사회자 최광기씨도 여성신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1년 1회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성마라톤대회’의 사회자를 맡았으며 여성신문의 주요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현재 S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최광기의 SBS 전망대’ 진행을 맡아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초기 여성신문의 디자인을 책임졌던 박연선씨는 현재 홍익대 조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18년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여성언론으로 성장해 왔다는 게 뿌듯하다. 여성신문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소감을 전해왔다.

여성신문 창간 주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 여성신문 창간 주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대중·이희호 전 대통령 부부,

우명미·신애라 모녀 창간 주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여성신문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탤런트 신애라씨와 어머니 우명미씨는 여성신문 모녀 주주로 알려진 인물이다. PD와 방송작가 출신인 우명미씨는 여성신문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아쉽게도 200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애라씨는 올해 영화 ‘아이스케키’에서 70년대 촌스러운 어머니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보여줬으며 남편인 차인표씨와 함께 아이를 공개 입양하는 등 공익적인 일에 앞장서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의 이영애 변호사와 김찬진 변호사는 부부로 초창기 대주주가 됨으로써 여성신문의 성장을 도왔고 주주인 김의정 명원재단 이사장은 우리 차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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