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의 행복

오늘은 장날. 엄마 손 잡고 장 구경 가는 날이다. 예산에는 5일과 10일 서는 안장이 있고, 3일과 8일 서는 역전장이 있어 일주일에 두 번씩 5일장이 선다. 집집마다 고추, 알타리, 깨 등 농사 지은 것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생활비 만드는 날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작년 11월 큰 병치레를 한 후에 거동이 불편하여 마을 한 바퀴가 생활 반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장 구경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장날이면 용무가 있건 없건 어머니 손잡고 나선다. 오늘은 장터 가는 길에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장터 가는 길목에 있는 고물상에 들러 그동안 모아둔 신문지를 팔 생각이다. 고물상 마당에 신문지 다발을 내려놓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저울에 단다.

“56킬로네… 이렇게 많아도 돈은 몇 푼 안 되는데….”

고물상 아주머니가 내가 실망할까 보아 미안한 얼굴로 쳐다본다.

“알아요… 얼마 주실 거예요?”

“1킬로에 35원이니까… 2000원이네….”

“어머, 2000원이나 주세요? 2000원이면 시장에서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기분 좋아하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맘 놓은 듯 웃으신다. 어차피 버릴 것으로 2000원이나 손에 쥐니 횡재한 기분이다. 장에 가면 2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가지고 나온 따끈따끈한 손두부 두 모나 살 수 있고, 예쁜 화분도 하나 살 수 있고, 도라지 고사리 고구마순… 어느 푸성귀나 2000원어치면 푸짐하다. 그리고 또 행복한 한 가지를 할 수 있다. 장날이면 장터 귀퉁이에 으레 천막 몇 개가 쳐진다. 국밥집, 백반집이다. 커다란 들통에서 펄펄 끓고 있는 내장탕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얼마 전 장날, 유난히 팥죽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국밥 집을 기웃거렸다.

“팥죽 파는 데는 없나?”

“저기 있네….”

천막 한 곳에서 커다란 양푼에 팥죽이 끓고 있었다.

“팥죽 두 그릇이오.”

상 위에는 기본 반찬이 접시마다 수북수북 넉넉하게 담겨져 있었다. 호박 무침, 오이 무침, 얼갈이김치, 깻잎, 감자조림, 깍두기….

“맛있겠다….”

이어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팥죽 두 그릇을 쟁반에 들고 오는데, 아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자장면 곱빼기만한 그릇에 찰랑찰랑, 도시에서는 이거 한 그릇이면 세 그릇은 만들 분량이다.

“어머나, 이걸 어떻게 다 먹어? 할머니, 한 그릇만 하면 안 돼요?”

“그려….”

맘 좋은 할머니는 한 그릇만 내려놓고 한 그릇은 도로 가져가신다.

엄마와 나는 팥죽 한 그릇에 숟가락 같이 꽂고 실컷 먹었다.

“맛있다. 잘 먹었어요. 할머니 얼마예요?”

“1500원.”

“잉? 1500원? 아니 설거지 값도 안 나오겠네….”

“시골 노인들은 이것도 비싸다고 1000원 하자고 그러는데…?”

그날, 어머니와 나는 15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에 정말로 행복했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은 수입이 2000원이나 생겼으니 팥죽 한 그릇을 외면할 수 없다.

“엄마, 신문 판 돈으로 팥죽 사먹자.”

“그래….”

장터 천막 식당엘 들어서니 점심때라 그런지 북적북적 테이블이 거의 다 찼다.

“여기 팥죽 한 그릇이오.”

한 그릇만 시키는 것이 좀 미안하긴 해도 두 그릇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양이라 어쩔 수 없다. 이때 천막 안으로 들어선 할아버지 한 분이 주문을 하신다.

“막걸리 한 사발만 줘….”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시려는 모양이다. 팥죽 한 그릇에도, 막걸리 한 사발에도 갖가지 기본 반찬이 모두 제공된다. 우리는 할아버지 상으로 옮겨 앉았다.

“할아버지 같이 앉아도 되죠?”

“그려….”

한 벌의 반찬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할아버지도 웃으시고 나도 웃고 어머니도 웃었다.

15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은 오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